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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가 있는 이곳 정동은 참 기품있는 길이다.
새잎과 꽃이 피어나는 봄, 푸르른 은행잎이 싱그러운 여름날, 노랗게 단풍든 갈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그리고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에도 이 길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우리에게 기품있는 낭만을 선사해 준다. 지난 가을 어느 날엔 서늘한 가을바람에 날리는 노란 은행잎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운전대를 잡은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우와’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이 길 주변에 유서깊고 배경이 아름다운 정동교회와 덕수궁이 있어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를 자주 보게된다. 결혼 전에 야외촬영을 하기 위해 치렁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로 성장을 하고 이런 저런 자세를 취하다 약간씩 지쳐있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예비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환상속의 결혼’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는 떨어져 있기 싫어 함께 살기로 정하는 그런 약간은 낭만적인 요소도 갖춘 그러나 사회적인 제도 안의 계약이고, 공식적으로 두 사람의 섹스를 허가받는 것이기도 하고 드디어 온전한 한 성인으로서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조직인 가정을 꾸리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낭만적이라기보단 현실속의 생활에 보다 가까운 제도임에도 우리 젊은 연인들에게는 그저 낭만과 열정적인 사랑이 계속되는 환상으로 결혼은 인식되는 것 같다.
나는 치렁한 웨딩드레스를 훌쩍 치켜든 신부들을 보며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림을 느낀다.
“결혼식이 시작될 때까지는 무도회에 참가하는 신데렐라지만, 결혼식과 허니문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 자정을 넘긴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 현실 속의 결혼이니 정신 바짝 차려라”고 말이다.
결혼은 꿈이 아니고 생활이다. 결혼은 어느 광고에서처럼 하얀 타이트 스커트에 병아리색 니트를 입고 예쁜 표정으로 호호 불며 유리창을 닦는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몸빼바지를 입고 팔을 걷어부치고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결혼의 진실이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얼마나 배려하고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노력하는 자세 여하로 더 행복한 결혼이 될지 아닐지가 결정된다. 상대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빠져 쉽게 결정하고 무작정 들어가면 곧 너무나 위험한 여행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시작한 것 같은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사랑과 열정의 차이>
나는 사랑과 결혼을 앞둔 미혼들에게 열정과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코렐리 대위의 만돌린’이라는 영화를 보여준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접근한 이 영화는 그리스의 한 조그만 섬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 영화 안에서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사랑학 박사가 무색할 정도로 통찰력있게 사랑에 대해 딸에게 이야기한다. 섬의 순박한 아가씨라기엔 너무 지적인 아름다운 여주인공 펠리기아가 잘생기고 건강하지만 무식한 섬총각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할 때 그 아버지는 딸을 말린다. ‘결혼은 한쪽이 너무 기울어서는 안된다’며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하지만 여주인공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약혼을 강행한다.
하지만 곧 그 청년은 군인으로 지원해 떠나가고 여주인공은 매일 애타는 사랑의 마음을 써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청년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섬으로 이탈리아의 젊은 장교 코렐리가 부임한다. 그는 음악과 자유로운 삶을 사랑하는 멋지고 지적이기까지 한 남성이었다. 적군인 그를 적대시하고 어린아이와의 놀이에까지 인색하게 구는 여주인공에게 그는 ‘전시에는 사소한 즐거움조차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줄 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과 주장이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 끌리고 사랑하게 된 딸의 마음을 눈치챈 아버지는 어느 날 그와 황홀한 사랑을 나누고 들어온 딸을 불러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랑은 매 순간 그를 생각하고 온몸에 그의 키스를 받고 싶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빠진 것일 뿐 사랑은 아니다. 사랑이란 그 열정이 사그라지고 난 후에도 그와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된 상태, 바로 그것이니까. 넌 코렐리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겠니?” 그렇다. 바로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이 사그라졌을 때 비로소 깨닫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결혼을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불같은 사랑하는 마음이 좀 수그러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가? 또 그 사랑을 계속 가꾸어 더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으로 숙성시켜 갈 것인가? 그럴 수 있다면 비로소 결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려면 또 다른 많은 물음이 필요하다.
“그는(혹은 그녀는) 나와 가치관이 같은가, 돈에 대해, 직장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그를 둘러싼 환경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그는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인가, 그는 자기 부모를 이상화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그는 주도권에 민감하다 못해 강박증을 가진 사람은 아닌가. 그는 사람관계를 수직적으로 푸는 사람인가, 수평적으로 푸는 사람인가” 등. 사실 성가치관, 일에 대한 가치관, 인생에 대한 가치관, 돈에 대한 가치관이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하고 수월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결혼이란 어른과 어른이 만나 함께 사는 것이다. 서로에게 의존적이지 않은 독립된 두 개인이 만나 서로의 자유를 얼마간은 인정하면서 함께 인생의 동반자로서 자신의 발걸음과 배우자의 발걸음을 확실하게 걷는 것이 진정한 결혼의 모습일 것이다.
여성신문 제713호
인터넷경향신문 미디어칸 성문화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