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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속 탐하는 이를 두고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소리도 있지만 참말로 젯밥은 맛있었다. 큰집 제사는 명절 다음으로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장대 끝에 올린 알전구 밝은 마당에서 사촌들과 밤 이슥토록 술래잡기에 숨바꼭질을 하였다. 어린 사촌 하나 시렁에 숨긴 고무신을 못 찾아 끝내 울기도 하였다. 그래도 밤은 더디어서 끓는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귀신 이야기를 하였고, 눈이 큰 나는 제상 촛불이 괜스레 더 일렁이는 것 같았다. 느타리버섯 같은 아이들이 지쳐서 졸아도 얼굴 모르는 할아버지니 증조할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젯밥 먹으라는 기척에 벌떡 일어나면 정말 귀신이 한 짓처럼 제사가 끝나 있었다. 되직하니 식은 메밥에 구수한 무쇠고깃국은 졸음에도 넘어가고, 짭짤한 꼬막을 까고 양태와 조기 살을 바르고, 메인 목에 가지탕, 오이탕은 서늘하니 담백했다. 상을 물릴 때 큰어머니는 생밤에 곶감을 한 움큼씩 쥐어 주었다. 그렇게 잠든 날 아침에는 입맛이 없었다.
우리 집에 제사가 없어서 늘 불만이었다. 재취로 오신 할머니 모시고 사는 작은집이라 제사라고는 젊어서 죽은 삼촌에게 작은 상 하나 차려 주는 제사 말고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루청이 시린 동짓달 어느 밤이면 보름달빵 서너 개 올리고 촛불 밝혀서 스물아홉 청청한 나이에 꺼진 막내아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나는 시시하다고 떡도 없는 제사는 제사도 아니라고 떼를 써보기도 하였다.
이웃 아저씨를 따라 동네 조무래기들이 제사 많은 성냥간집에 젯밥을 얻어먹으러 갔다. 사철나무 울타리 그늘에 숨어서 아저씨는 낡은 대광주리를 성냥간집 마당에 던져 넣었다. 숨죽여 기다려도 주인이 내다보지 않았다. 아저씨는 대광주리를 가져오라고 울타리 구멍새로 아이들 엉덩이를 밀었다. 대광주리를 몇 번이나 던져 넣어도 주인은 내다보지 않았다. 소리를 못 들어서 그런다고 아저씨는 내게 양푼을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엿 하고 바꿔 먹어도 아쉽지 않을 찌그러진 양푼이어도 어머니가 텃밭에서 푸성귀를 거두어 오고, 개숫물을 받아다가 돼지 구유에 붓곤 하는 가재도구였다. 잃어버리면 혼난다고 울먹이는 소리에 아저씨는 걱정 말라고 다독였다. 머잖아 제삿집 토방으로 양푼이 날아갔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솥뚜껑을 떨어뜨린 아이처럼 우리는 놀랐다. 이윽고 안주인이 나와서 양푼을 들고 서서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안주인은 제사 음식을 담아다가 사립문 앞에 두고 돌아갔다.
그 재미에 취해 우리 아이들은 동네에 제사가 있다 하면 양푼을 들고 밤길을 나섰다. 동네에서는 없이 살 때 젯밥 나눠 먹던 옛 풍습이 돌아왔다고 말들이 많았다. 약방집 제삿날에는 그 집 개가 무서워서 감나무에 올라가서 양푼을 던졌다. 인심이 야박하다고 소문난 집이라 허탕이나 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양푼을 서너 번이나 토방으로 던져도 주인은 내다보지 않았다. 동네 떠나갈 듯 개가 짖어 댔다. 이윽고 주인이 나오더니 개밥그릇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양푼을 개집 앞으로 갖다놓고 사라졌다. 밤새 양푼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할머니 제사에는 우리 집 두 아이와 조카들이 신이 난다. 제상을 차리면 아이들이 쫑알쫑알 묻는 게 많다. 누구 생일이에요? 누구네 할머닌데요? 영정 사진 속 무섭게 생긴 할머니가 드실 음식들이라고 설명하면 어린 아이들은 마냥 무섭고 신기한 모양이다.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할머니가 기차 타고 와서 이 많은 음식을 드시고 간다고 하니 아파트 베란다를 기웃거린다. 할머니에게는 너희들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해 주었더니 네 살짜리 조카아이는 빈 제기 위에 덥석 앉는다. 양태, 조기, 서대, 능성어가 누릿하니 맛있고, 바지락 넣고 찹쌀 갈아 쑨 오이탕, 가지탕이 옛 맛 그대로다. 제상 앞에만 앉으면 게걸스러워지는 나에게 아내는 눈을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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