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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어머니가 잡아준 새
kklist21 | 추천 (0) | 조회 (578)

2010-05-14 19:01

어른이라지만 어머니는 유난히 신발이 잘 벗겨졌다. 매사에 마음이 앞서서였다. 어머니는 농부로, 주부로, 6남매의 어미로 늘 쫓기는 사람처럼 바빴다. 흰 고무신이 벗겨졌는데도 곧장 내달리는 바람에 뒤따르던 내가 주워서 갖다 준 적도 있었다. 무슨 다급한 일이라도 벌어졌는가 싶어 쫓아가 보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기껏 아버지에게 농기구를 전해 주는 일이라든가, 학교 가는 형들을 붙잡아 도시락을 안겨 주는 일 정도였다. 나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조급증이 딸을 여럿 못 낳고, 아들만 다섯을 낳아서 그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머니는 욕을 잘했다. 대부분 어머니 자신에게 쏟아 내는 욕이었으니 그것은 한탄이랄 수 있었다. 그 중 으뜸은 아들을 다섯이나 낳은 신세 한탄이었다. 가끔 나에게 “니라도 밑이 찢어져 나왔어도 나가 숨 좀 돌리고 살았을 건디…….” 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아들로 태어난 게 죄스러울 때가 많았다. 한 번은 부모님이 싸움을 심하게 한 끝에 어머니가 외가로 가 버렸다. 어머니는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외삼촌과 이모들에게 몇 차례 경고를 받은 전력이 있어서 어머니를 찾아 나설 엄두를 못 냈다.

어머니를 찾아 외가로 간 사람은 어린 나였다. 외가는 아이 걸음으로 사십여 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이웃 마을이었다. 나는 외가 마당에 서서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이모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반가움보다도 외려 외가의 그런 안온함에 반감이 들고 뒤미처 소외감이 밀려왔다. 혹시 어머니가 외갓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외할머니와 이모가 마루로 나와 맞아 주었다. 홀로 어머니를 찾아온 어린놈이 조금은 갸륵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모가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손을 끌었다. 나는 손을 슬며시 뿌리치고 마당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이모들은 제 아버지를 닮아 고집도 세다고 쑥덕거렸다. 그제야 어머니가 마루로 나왔다. 어머니를 보자 그 동안 참고 있었던 설움이 솟구쳤다. 어머니가 어깨를 토닥이며 방으로 들자고 했다. “집에 가자고!” 나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소리쳤다. 사실 나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었고, 그 틈으로 비어진 발꿈치는 며칠째 씻지 않아 까맸다. 그게 부끄러워서 도저히 방으로 들 수가 없었다. “야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못 당해야.”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핑계거리를 잡은 듯 쭈뼛거리며 슬리퍼를 벗고 고무신으로 갈아 신었다.
어머니가 돌아오고 곧바로 땔감을 장만하는 철이 돌아왔다.

해마다 어머니는 마을 뒤 야산에서 낙엽을 긁었다. 그 산에는 애장 터와 피막 자리가 있어서 낮에도 무서운 곳이었다. 산감이 수시로 감시를 도는 코스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별 쓸모도 없는 나를 꼭 데리고 나무를 하러 다녔다. 땔감 장만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열흘은 족히 걸렸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낙엽을 긁어모아서 묘처럼 쌓아 두었다가 해거름에 망태에 담아 집으로 날라야 했다. 옮기는 작업이 밤으로 이어지는 날에는 손전등을 밝히고 그 무서운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아직 아버지와 온전한 화해가 안 돼서 어머니의 그해 땔감 장만은 더욱 힘겨웠다.

어머니가 나무를 하는 동안 나는 시야가 트인 묘 자리나 산길에서 어머니를 기다려야 했다. 갈퀴 소리가 멀어지면 그늘 깊은 뒷간에 앉은 아이처럼 소리쳐 어머니를 찾았고, 반대로 어머니가 정적을 못 견뎌 내 이름을 부르곤 했다. 어린 내게는 무료하고 힘든 일과였다.

사흘째 되는 날인가 오리나무 숲으로 막 들었던 어머니가 손아귀에 뭔가를 감싸 쥐고 나왔다. 난데없는 새였다. 눈을 뒤룩거리는 놈은 산비둘기보다 작고 때까치보다는 컸다. 부리는 매처럼 날카롭고 머리와 가슴은 온통 황갈색이었다. 어머니는 억새 풀숲에서 그 새를 잡았다고 했다. 나는 놈을 조심스럽게 받아 두 손으로 날개를 감싸 쥐었다.
“이름이 뭐댜?”
“……자지 물어 갈 새제 뭐겄냐.”
“뭐라고?”
나는 귀를 의심하며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자지물어갈새랑게. 어디 가지 말고 고것 갖고 놀고 있어야.”
어머니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파닥거리는 새가 도망갈세라 두 손으로 날개를 감싸 쥐고 어쩔 줄 몰랐다. 이윽고 새가 순해지자 나는 가만히 고무줄 바지를 내렸다.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면서 자지러졌다. 그 서슬에 새가 날아가 버렸는데 나는 울면서 아랫도리를 보고 또 보았다. 어머니가 숲에서 뛰어나왔다.
“참말로 꽉 물어 부렀다.”
나는 울먹이며 말했고, 어머니는 바지를 훌떡 끌어올려 주며 등짝을 맵게 내질렀다.
“워매, 썩을 놈! 뭔 지랄한다고 고걸 새한테 내보이냐!”
하곤 사색이 되어 내 바지를 거친 손으로 훑어 내리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