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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kklist21 | 추천 (0) | 조회 (525)

2010-05-21 00:15

어린 날에는 함부로 사람에 대해 말하곤 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 하지만 시나브로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알면 알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감히 함부로 사람에 대해 단정 지어 구분하고 평가할 수 있었던 건, 상대를 몰랐다기보다 나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약하고, 때로 나쁘고,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지 스스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만큼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세상에 없다. "문학은 인간학"이라는 러시아 소설가 고리키의 말에 빗대자면 문학을 업으로 삼은 나는 이른바 "인간학자(?!)"인데, 아무리 연구해도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조심조심 살펴보고, 집요하게 뜯어보고, 치밀하게 해부해 봐도 그 기기묘묘하고 변화무쌍함을 다 설명해 내기 어렵다. 약하고 어리석지만 때로는 엄청난 힘과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고, 몸서리쳐지게 잔인하고 악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놀라운 희생과 헌신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체온365)라는 자전거 선수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신비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랜스 암스트롱, 25세에 고환암에 걸려 죽음의 목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한 뒤 세계 최장의 사이클 경주 코스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운 선수! 중학교 시절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던 것을 빼면 두 바퀴 물체와 거의 관련 없이 살아온 내게도 익숙한 이름인 걸 보면 그의 위대한 인간 승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뻔한 "인간 승리" 드라마의 진부함에 몸서리를 치는 나 같은 사람에게나 바깥으로만 드러난 그의 화려한 경력에 열광하는 사람에게나, 자칫하면 그는 그저 그렇고 그런 "빛나는 껍데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고백의 기록을 통해 나는 진정한 "인간" 랜스 암스트롱을 만난다.

“나는 두려움이 뭔지 안다고 생각했다. “암입니다.”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창 사이클 선수로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그는 말기 암 선고를 받고 격렬한 투병을 시작한다. 물론 우리의 암스트롱은 다행히도 암을 이겨 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내가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다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일어난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재기를 포기하고 건달처럼 지내며 살 때) 완전히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암을 극복했기 때문이었다. 암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이제 뭘 하지?" 하며 방황하는 전형적인 경우였던 것이다.”
그는 죽음보다 삶이 더 두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과감히 고백한다. 약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건 바로 암의 선물이었다.
“암과의 투쟁이 없었다면 투르 드 프랑스를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암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암은 잃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건강이건 집이건 예전의 자신이건 가끔 무언가를 잃는 경험은 인생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게 생각거리와 감동을 준 많은 대목들을 여기 다 옮겨 적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신시내티 인콰이어리>의 리뷰를 빌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니다. 스포츠 이야기도 아니다. 영혼의 이야기다.” 그래서 삶은 영원한 공부인 게다.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가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긴 레이스인 게다. 마침내 죽음의 결승점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삶은 사이클의 두 바퀴처럼 끝없이 구르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