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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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1 00:17
퇴근길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물결을 바라보면 엉뚱스레 궁금해진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세상 어딘가에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반짝이는 불빛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고단한 일로 몸이 파김치라도, 괴팍한 상사에게 된통 깨졌더라도, 지갑은 홀쭉한데 월급날은 아직 멀었다 해도, 나를 기다리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발걸음이 바빠진다. 그래서 인류는 유목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샘을 파고 밭을 일궈 정착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나를 붙잡아주고 기다려 줄 그 무엇을 갖기 위해.
하지만 냉혹한 경쟁이 지배하는 자본의 세상에서는 그 작은 불빛 한 점을 지켜 내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 직장을 잃고, 병에 걸리고, 몇 가지 불운만 연속해 겪어도 금세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다. 적게 가진 사람일수록 쉽게 잃는다. 그 많지 않은 것마저 되찾기 어렵다. 역, 공원, 지하상가 등에서 우리는 그런 이들과 종종 마주친다. 때에 쩐 옷과 씻지 못한 몸에 눈살을 찌푸리고, 풍겨 오는 술 냄새와 비틀걸음에 소스라치게 놀라 피하기도 한다. 이른바 노숙자라고 불리는 홈리스(Homeless)들이다. 몇 해 전 술에 취한 노숙자가 플랫폼에서 승객을 떠밀어 떨어뜨리는 사고가 실제로 있기도 했지만, 몇몇 사건 사고와 도시 괴담을 통해 이들은 무시와 혐오감을 넘어선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일할 의지가 없음을 욕한다. 왜 당국에서는 이들을 깡그리 쓸어버리지(!) 못하는지, 종교단체는 어쩌자고 무료 급식을 하며 이들을 보호하는지 알 수 없다고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하면 사회 속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밥? 일거리? 잠자리? 치료와 보호? 과연 그것만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그들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런데 《행복한 인문학》(이매진)이라는 책에는 참 이상한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숙자(노숙인)과 죄수(수용자)와 극빈층에게 밥과 잠자리 대신 그 이름도 어렵고 고상한 "인문학"을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펴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교수님"들 역시 첫 강의를 하러 들어갈 때에는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서 "인문학과"들이 인기 없는 전공이 된 지 오래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고 부자가 무조건 인격자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인문학"은 케케묵은, 돈 안 되는, 사치스런 학문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런데 당장의 끼니와 잠자리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문학과 예술과 철학과 역사가 어쩌고저쨌다고?!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그 다음부터다. "사람은 진실로 무엇으로 살까?-나는 진실로 무엇으로 살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공부하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철학과 문학과 역사에 멀 듯한 사람들이 자기 삶의 철학자이자 작가이자 역사가로 변신한다.
“철학 주제를 가지고 우리 이야기를 하고 그걸 교수님과 함께 정리하니까 결국 우리가 살아온 삶이 철학이네요”
알코올 중독을 치료받으며 폐지와 공병 수집으로 자활 의지를 다지는 누군가가 말한다.
“5년간의 군대 생활의 상처가 6개월간의 인문학 교육으로 해소되었다.”
5.18 광주항쟁 당시 진압군 중대장, 삼청교육대 중대장으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절의 현장에 있던 가해자가 고백한다.
“배우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인지 몰랐어요. 교실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너무 좋아요.”
지금껏 단 한 번도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실감, 자신 역시 소중한 존재라고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이 배움 속에서 이토록 행복해 한다.
돈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밥은 배를 채우고 집은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한다. 하지만 영혼의 허기는 돈과 밥과 집으로 채울 수 없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평론가인 얼 쇼리스가 1995년 창설한 <클레멘트 코스>는 바로 이러한 "가난한 이를 위한 희망수업"이다. 이 책에는 코끝을 찡하게 하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인문학자들이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 인문학자들과 "선생님"들은 서로를 통해 삶과 사람을 배운 것이다. 사문들이 사바대중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목탁을 치듯, 그들은 지금 온몸을 던져 육탁(肉鐸)을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배한봉의 시 <육탁肉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