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D/패스
낙서 유머 성인유머 음악 PC 영화감상
게임 성지식 러브레터 요리 재태크 야문FAQ  
[퍼온글] 고민하라, 후회없이!
kklist21 | 추천 (0) | 조회 (532)

2010-05-22 00:15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에서 재미있는 글귀를 읽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여기까지는 《논어》의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공부든 일이든 잘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며 즐기는 것이다. 말로는 쉬워도 실천하기 어려운 게 분명하지만, 그 말뜻은 진정으로 자신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와 일을 선택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부와 일이라면 신나게 즐기며 하지 못할 까닭이 무언가? 그런데 정희진은 오래된 고전의 말씀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한다!”

고민? 느닷없이 웬 고민? 사람들은 흔히 “고민이 많아 죽겠다.”고 말한다. “아무런 고민 없이 좀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고민은 처치 곤란의 애물단지다. 아무도 달갑게 여기거나 반가워하지 않는 열손님이다. 그런데 머리 좋은 사람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까지도 고민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시쳇말로 “이건 뭥미?”가 아닌가?
하지만 찬찬히 따져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고민"이란 깊은 생각과 진지한 반성이라기보다 자질구레하고 번잡스런 걱정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이 고민하는 95%는 정작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며, 실제로 일어난 걱정거리조차 한 달만 지나면 90%는 잊어버리게 된다는 통계가 나온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고민이 아닌 진정한 고민, 머리 좋고 성실하고 즐기며 일하는 사람까지도 몽땅 뛰어넘을 수 있는 고민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2세로서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강상중은 《고민하는 힘》(사계절)에서 다음 같은 질문들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 질문들을 받아들고 보니 정말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어느 하나도 명쾌하게 해답이라고 내놓을 수 없다.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니 학벌이나 학위 따위도 소용없다.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지혜가 필요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젊음에 지표가 되어 주었던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풀어 쓰는 방식으로 이 만만찮은 고민거리들에 차근차근 접근해 간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도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해답이 없는 질문이라도, "영혼이 없는 전문가, 마음이 없는 향락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만이 강조된다. "먹고사니즘"에 붙매여 허덕이느라 더 이상 근본적인 삶의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실로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속 주인공은 물질만능주의의 노예가 되어 더 이상 고민하고 싶어 하지 않는 동물 같은 인간들의 숲속에서 이렇게 절규한다.
“모두 돈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렇게 돈 이외의 다른 것은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힘"이 되는 "고민"이란 결국 삶의 방향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고,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사람다운지를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다. 좋은 머리에 성실한 태도로 즐겁게 일을 한다 해도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몰며 빨리 달린다고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골치 아프게 고민하기 싫다며 문제를 외면해 버릴 때 삶은 다만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속에 살고 죽는 흐리멍덩한 취생몽사(醉生夢死)에 불과하다. 열심히, 즐겁게, 후회 없이 고민하라! 그토록 행복한 고민의 힘만이 삶을 보다 생생하고 풍부하게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