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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Heroes)>. 동생이 요즘 푹 빠져 사는 미국 드라마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영웅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밤마다 제 방 컴퓨터로 이 드라마를 보기 때문에, 잠을 청하려 누워 있곤 하던 저까지 어느새 <히어로즈>를 보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인도의 한 유전학 교수가 유전학자인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세상에는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됩니다. 유전자 변형에 의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슈퍼 히어로. 하지만 그들은 바로 우리들의 이웃과 다름없었습니다. 절대적 신체 재생 능력을 가진 치어리더, 자유자재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도망자, 기계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꼬마까지….
대학 시절, 같은 동네에 사는 자폐아 소녀에게 공부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아이는, 수학 문제 풀기를 참 좋아했어요. “언니, 나 수학 하면 안 돼? 언니, 나 수학 하면 안 돼? 언니, 나 수학 하면 안 돼?”하며 다른 과목은 싫다고 떼를 쓰곤 했죠. 그런데 그 아이가 특별히 잘 하는 게 있었어요. 바로 돈 계산. 명절에 세뱃돈 얼마를 받았는데, 동생들에게 얼마씩 나눠주고, 엄마에게도 얼마를 드리고, 얼마는 저금하고 나니, 얼마가 남았다고 몇 번씩 반복해 말하곤 했습니다. 돈 계산이라곤 젬병인 제 눈에, 그 아이는 마치 걸어 다니는 계산기 같아 보였습니다. 계산 잘하는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아주고 싶었지만, 제겐 역부족이었죠. 결국 아이는, 또래 아이들이 고3이랍시고 대학입시를 준비할 무렵 완구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어요.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요즘도 동네 슈퍼나 빵집, 과일 가게 앞에서 그 아이와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이젠 아이가 아닌 아가씨가 되었지요. 며칠 전에도 동네 슈퍼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제 손에 든 물건을 쓱 훑어보더니 “언니! 나는 5,950원 내면 되고, 언니는 6,480원 내면 돼!”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한번만 보면 물건 가격을 다 외우고, 슈퍼마켓 현금계산기보다 더 빠르게 합계를 내 버리는 아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야말로 <히어로즈>에 나오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우리 이웃엔 그렇게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박헤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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