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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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13:46
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으로 단풍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단풍색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도 많았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어딜 가도 복작였답니다. 노란 은행잎이 발 아래 폭신하게 깔린 남이섬도 좋았고요.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저녁 시간도 참 행복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은 모두 등산을 나섰고, 전 혼자 남아서 저희가 묵었던 휴양림 근처를 어슬렁대고 있었죠. 그러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근처에 있다 보니 그들이 나누는 대화소리가 자연스레 들렸습니다. 아들 부부가 농사일 때문에 한 번도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어머니아버지를 모시고 단풍놀이를 온 것이었죠. 사실, 그들은 누가 봐도 초보 여행자 같았습니다. 산속에 자리 잡은 휴양림에 오면서 할아버지는 양복 차림이었고, 할머니는 빨간 뾰족 구두를 신고 계셨거든요.
곁눈질로 훔쳐보던 제 시선을 느꼈을까요? 아들이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카메라를 받아들었는데, 그가 건네준 카메라는 낡고 낡은 필름식 카메라였습니다. 디지털카메라에 익숙한 전 잠시 당황했고, 아들은 “보기엔 이래도 사진은 잘 나와요.”하며 쑥스러워하셨죠. 노부부와 젊은 부부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섰습니다. 그들이 선 곳은 "oo 휴양림"이라고 크게 새겨진 바위 앞. 보통 사람들 같으면 촌스럽다며 잘 찍지 않는 곳이죠. 하지만 할머니는 저에게 연신 저 글자가 잘 나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네~ 아주 크게 잘 나오네요. 걱정 마세요.” 크게 대답하고는 셔터를 눌렀습니다.
딱딱한 차렷 자세에 굳은 표정,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그 광경이 왜 그리 아름답던지요. 생애 처음 단풍 구경을 나온 노부부의 어색한 몸짓이 아름다웠고, 한껏 흥을 돋아 주던 아들 부부의 마음씨도 아름다웠습니다. 얼마 뒤, 전 그 바위 앞에서 저희 부모님과 다정한 자세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왜 하필 여기냐고 툴툴대는 엄마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그저 지금 이 시간, 저와 함께하는 부모님이 소중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으니까요.
임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