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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착한 어린이 상
kklist21 | 추천 (0) | 조회 (534)

2010-05-31 21:41

“발 시리지 않아? 엄마한테 새 신발 사달라고 하지.”
“아니요. 괜찮아요.”

초등학교 2학년,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던 날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 조회 시간, 아직도 빨간 샌들을 신고 운동장에 서 있는 제게 담임선생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앞부분이 터지기까지 한 샌들이 선생님 마음에 무척 걸렸나 봅니다.
맏딸이라 그랬는지 저는 엄마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 본 기억이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언젠간 사주겠지 하고 기다릴 뿐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했습니다. 형편을 미리 눈치 채고 알아서 처신한 거겠죠. 그때도 새 신발을 사달라고 하지 못해 가을인데도 여름 샌들을 줄곧 신고 다녔던 겁니다.

그런데 며칠 뒤 선생님은 "착한 어린이" 라고 새겨진 빨간 배지를 제게 주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각 반에서 다섯 명씩 착한 어린이를 선정해 이 배지를 주었습니다. 그러면 한 달 동안 가슴에 이름표와 함께 나란히 달고 다녔죠. 선생님은 어린 나이에 가정 형편을 알아서 받아들이는 제게 착한 어린이 상으로 나름 뭔가 위안을 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착한 어린이 상". 지금 딱 초등학교 2학년인 작은아이와 한자 시험공부 때문에 며칠 씨름을 하다가 문득 이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이런 상을 주는 학교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사실 아이가 받아 오는 상을 보면 모두 능력과 결과에 치중한 것들뿐입니다. "독후감 다독 상", "가족신문 만들기 상", "그림대회 상", "일기쓰기 상", "한자 급수 인증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준다는 면에서 상은 여러 가지 많이 주면 좋겠죠. 하지만 능력과 수치에 집중한 상 말고 가치를 가르칠 수 있는 상도 있었으면 합니다.

착하다는 것. 이 단어의 뜻 자체가 요즘은 맹하고 자기 것 챙길 줄 모르는 것으로 바뀐 듯하지만 착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요. 남에게 절대 폐 끼치지 않으며 곱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으로 학교에서 상을 준다면 아이들은 은연중 사람은 착해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 주는 일은 이런 작은 상 하나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책 100권 읽은 걸 칭찬 하는 상도 좋지만 몸이 불편한 친구의 가방을 들어 주는 착한 마음에, 교실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 버린 솔선한 행동에 주는 상이 아이에게 더 소중합니다. 제 어린 시절의 "착한 어린이 상" 같은, 가치를 가르치는 상이 많이 생겨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느끼면서 크면 좋겠습니다.

교육서는 칭찬도 정확하게 상황에 맞게 하라고 가르치는데 저는 모든 칭찬을 이 한마디로 합니다. “아이, 착해. 너무 예뻐.” 숙제를 다 해도, 이를 잘 닦아도, 말을 잘 들어도, 밥을 잘 먹어도, 심지어 응가를 잘해도요. 저 잘못하고 있나요?

김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