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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이웃 사촌
kklist21 | 추천 (0) | 조회 (711)

2010-06-04 19:02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할머니할아버지는 물론 삼촌, 고모까지 열 식구가 넘는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그래서 자주 그런 상상을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만약 큰 집을 짓게 된다면 1층엔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우리가 살고, 2층엔 고모네, 3층엔 삼촌네 하면서(그림까지 그렸다). 친구와 있을 때는 또 그랬다. 1층엔 윤희랑 은숙이, 2층엔 나랑 정연이랑 살자고.

시집 와서 삼촌 둘, 고모 둘을 결혼시킨 엄마가 알았으면 졸도할 상상이었지만(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게 친정집 근처에 삼촌네, 고모네가 가까이 살며 사흘이 멀다 하고 만난다). 가족과 친구 관계가 다였던 그 시절엔 그렇게 모여 사는 게 당연하고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오순도순 가족과, 친구들과 모여 재미나게 살 수 있으리란 꿈.

결혼해 부모님과 따로 사는 현재를 돌아보면 정말 그 시절의 꿈은 상상 뿐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형제들 모두 결혼해 당연하다는 듯이 분가했고,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으며 함께 살 거라 생각했던 삼촌, 고모들은 시집 온 뒤 뵌 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시절의 상상을 실현시킬 만큼 사는 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

얼마 전 한 합창 대회 때문에 아파트 단지 사람들과 여러 날 밤, 노인정에 모여 연습을 하게 됐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또 퇴근길을 서둘러 모인 아줌마, 아저씨들. 대부분 4~50대에다 흰 머리 어르신도 계셨는데,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린 건 처음이라 기분이 아주 묘했다. 어린 시절 명절 때 모인 친척 같은 느낌. 출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는데 연습 뒤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삼촌이, 고모가, 오빠가 그 이웃에게 겹쳐졌다. 아파트 난방비, 온수비 적게 나오게 하는 방법 같은 쏠쏠한 정보도 얻고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노래까지 부르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서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구나 싶었다.

추운 겨울 잠자리에 들 때 딸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최고 듯 어려운 시절 사람과 정을 나누는 것만큼 훈훈한 게 없다. 곁에 있어 주며 그냥 툭 던진 한마디에 까르르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 그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힘이 된다.

편집장 김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