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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찍어 보는 가족사진이었어요. 남들은 집안의 누가 군대를 가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한번씩 찍는다는데, 저희 집에선 하나밖에 없는 아들 군대 갈 때도 그럴 생각을 못하고 넘어가버렸거든요. 사실 이번에 찍은 가족사진도, 아버지 환갑이 아니었다면 굳이 찍을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여느 생신과는 다른 날이라 뜻 깊은 행사를 궁리해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잔치를 벌이기엔 비용이 만만찮고, 식사만 하기엔 어딘지 아쉽고, 그냥 손쉽게 부부 동반 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그건 됐다며 가족사진이나 찍자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조금 놀랐어요. 한번도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왜 진즉에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지요. 무엇보다도 환갑을 맞아 의미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시다 결국 기념으로 남길 사진을 떠올리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뭉클했습니다. 생애 첫 가족사진 앞에 저희 가족은 조금 얼었습니다. 스튜디오의 조명 앞에 각 잡고 앉아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몇 번을 다시 찍었지요. 찍은 사진들을 그 자리에서 보여주는데, 모니터를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누구 하나가 괜찮게 나오면 누군가는 꼭 눈을 감거나 표정이 굳어서요. 결국 잘 나온 한 장을 액자용으로 골랐습니다. 근데 잘 나온 사진보다는, 그렇게 누구 하나는 눈을 감고, 누구 하나는 히죽이고, 또 누구 하나는 자세가 엉성한 사진들이 더 정이 가더라고요. 본래 가족의 모습에 좀더 가깝기 때문이겠죠. 스튜디오를 나와 조촐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싱거운 환갑행사였지만, 가족 모두 그 하루에 만족했답니다. 가족들과 좀 더 자주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김혜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