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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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5 19:21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잔소리를 참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특히 친정엄마는 자주 속담에 빗대어 야단을 치셨는데, 그 중 귀가 닳도록 들은 속담이 이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친정엄마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보이면 이 말을 시작으로 가차 없이 큰소리가 났지요. 혹시 나가서도 저렇게 처신하지는 않을까, 친정엄마의 앞선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꾸중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가시나가 집안 망신시킬라고...”라는 지청구까지 뒤에 붙게 되면, 그야말로 반항의 제임스 딘이 되고 싶었죠. 사실 야단거리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사 잘해라, 벗은 옷 제자리에 걸어라, 다리 모으고 앉아라, 입 다물고 음식 씹어라... 참 사소한 생활 습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 하나까지 집안을 들먹이니 어느새 머릿속에 "집안 망신 행동 금지"라는 표어가 비상등처럼 깜박이게 되었죠.
그러다 그게 자존심으로 바뀌었나 봅니다. 중학교 때 한번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저 혼자가 아니라 어머니아버지, 할아버지할머니까지 혼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내 자존심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낭패감을 맛본 거죠. 내가 잘못한 게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구나, 친정엄마 잔소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되지 말라"는 잔소리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범생이의 길을 걸으며 별 일탈 없이, 파격 없이 살아온 무미건조한 삶이지만 그래도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비난 받지 않으려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다 어릴 적부터 주입된 잔소리 덕분이지 싶습니다. 그것은 "집안 망신"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지만 사람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처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 또 그것은 작은 습관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지금 저도 친정엄마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친정엄마와 똑같은 마음으로("가시나가~"란 말만은 빼지요). 하지만 수학학습지 때문에 스트레스 너무 받으니 끊어달라는, 자신의 스트레스까지 관리하는 신세대 초딩에게 제 잔소리가 공허한 외침이 될까 걱정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하려고요. 커서 저처럼 엄마가 왜 그렇게 잔소리를 했나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글 김정아 편집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