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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추억의 힘
kklist21 | 추천 (0) | 조회 (540)

2010-06-25 19:22

얼마 전 취재를 갔다가 나무로 된 공기를 선물 받았습니다. 집에 와서 공기놀이를 하는데, 어릴 적 마당에서 돌로 하던 공기놀이가 생각났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태어나 학생들이 겨우 6~7명밖에 안 되는 분교에 다녔습니다. 언니 오빠들은 5학년이 되면 읍내 학교를 다녀야 해서 분교를 떠났고 나와 동급생 여자 아이, 남자 아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남동생 학년이 3명 입학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도 몰랐습니다. 소꿉놀이가 우리가 할 줄 아는 최대의 놀이였고, 그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한때는 학생이 많아서 교실을 두 개 쓸 정도였지만 내가 다닐 때는 한 교실이 비어 있었습니다. 빈 교실에는 책이 많았는데, 그 책을 참 열심히 읽었습니다. 지금은 책 내용이 어렴풋합니다.

동네에는 사진기를 가진 집도 없어서 그때를 기록해 둔 사진도 없습니다. 아, KBS에서 분교를 촬영해 갔는데,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녹화해 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얼굴, 학교 정원에 무궁화나무, 마을의 모습은 아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우리 집과 내가 빠졌던 우물도요. 사계절 중에는 유독 겨울만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눈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무릎이 빠질 정도였습니다. 난롯가에 빙 둘러앉아 골고루 난로의 온기를 나누며 공부했던 기억도 납니다. 도시 학교로 와서는 난로는 언제나 몇몇 사람에게만 혜택이 가는 존재였지요.

그러다 3학년을 마친 겨울이었는지, 이듬해 봄이었는지 그 산골 마을에서 이사를 나왔습니다. 우리는 신이 났습니다. 작은 소읍인데도 큰 도시로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나중에 커서야 알았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집과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 산의 원래 주인이 나타나 자기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었지요. 마을 사람들의 긴 법정 다툼 끝에 결국 지고 말았고요.

촌놈이 읍내 초등학교에 다니며 적응하느라 조금 힘들었습니다.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도 할 줄 몰라서 놀이에도 낄 수 없었고요. 그런데 여름방학 이웃 할머니 댁에 놀러온 외손녀 셋이 내 동무가 되면서 내게 공기놀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아침밥만 먹으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그들보다 더 공기놀이를 잘하게 됐고요.

내게 공기를 선물하신 분은 어릴 적의 추억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전혀 누리지 못한 촌스러운 어린 시절이 나는 감사합니다. 어느 날에나 따뜻하다 못해 아름다운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여덟 살짜리 아이를 떠올리면 행복해지니까요. 지금의 나는 아마도 그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좋은생각》 최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