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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어른스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kklist21 | 추천 (0) | 조회 (548)

2010-06-26 20:48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언니와 저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외모, 취향, 생활 리듬, 식성 그 어느 것 하나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특히 성격이 참 많이 다른데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종종 솔직 발랄함이 지나쳐 부모님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언니에 비해 차분히 제 할 일 하는 제게 어른들은 그러셨어요. 참 어른스럽다고요. 사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그다지 어른스러운 구석도 없었는데, 유난히 철없는 언니 덕에 얼결에 저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어른스러움"을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 고등학생 때는 남자친구 문제로 괴로워하던 교생선생님을 상담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하.

그러던 제 삶에 3년 전 여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좋은생각》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었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이직과 이별을 동시에 경험한 셈이죠. 어른스러운 저는 의연하게 이별의 아픔쯤은 훌훌 털고 새 일터에서 제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해내야 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기대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니 되도록 혼자 있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바쁜 날이 이어졌고, 어쩌다 여유가 생겨도 딴 생각이 똬리를 틀지 못하도록 요가 학원에 가거나 공원을 걸으며 몸을 재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서른 해 동안 잘 굴러 가던 몸에 쿨럭쿨럭 자꾸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 누구보다 달게 잠을 자던 제가 불면증에 양 수백 마리를 넘기는 것은 예사고. 툭 던져진 말 한 마디에 급체하기도 했죠. 마치 네가 겪은 일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몸이 “아프다 아프다.” 하며 너무 덤덤한 제게 항의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요가 학원에서였죠. 요가 수업 말미에는 항상 불을 끄고 명상시간을 가지는데요. 제 경우는 명상에 심취해 수면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죠. 그날도 역시 잠이 들락 할 무렵 익숙한 음악이 들렸습니다. 비 철철 오던 날, 강원도 어느 한적한 길 위에 차를 세우고 그와 함께 듣던 피아노 연주곡이었죠. 그런데 아, 갑자기 울컥하더니 줄줄 눈물이 흘렀습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한 명상시간에 다 큰 처녀가 훌쩍거리다니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에 창피한 저는 불이 켜지기 전에 얼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 터져 버린 울음보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길가에 쪼그려 앉아 누가 보든지 말든지 꺼이꺼이 한참을 울고 말았습니다. 그간 쌓아 온, 어른스러움이 한 방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순간이었죠.

그날 밤, 저는 단잠을 잤습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양을 세는 일도 없고요, 체하지도 않습니다. 또 어른스럽기 위해 무언가 애써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철, 없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어쩌면 어른스럽다는 건 울지 않는 것도, 괜찮은 척하는 것도 아닌 그저 담담히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며 속상한 마음을 토닥토닥 달랠 수 있는 지혜인 듯합니다. 혼자서 힘들면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손 내미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이겠지요. 맞나요? 그렇게 지금도 저는 가짜 어른스러움과 진짜 어른스러움 사이를 오가며 커 가고 있습니다. 하하.

글 《좋은생각》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