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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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4 03:11
새벽 4시 반. 오늘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눈이 떠졌습니다. 부지런하다고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이를 재우려다 같이 잠들어 버렸거든요. 요즘 아이 덕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어른"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퇴근하고 두 시간쯤 엄마나 아빠와 놀고 나면 딸아이는 슬슬 졸려 합니다. 주로 머리를 긁적이거나 하품을 하고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하는 그때, 그때가 피크지요. 하지만 잠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 달라, 우유 달라, 안아 달라, 업어 달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요구는 한번 씩 다 합니다.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처음엔 이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려고 했습니다만, 보아 하니 정말 목이 말라서, 업혀 있고 싶어서가 아니더라고요. 좀더 엄마와 놀고 싶은 일종의 어리광 같았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지요. 잠자리에서 더 재미나게 해 주는 겁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사촌 오빠, 사촌 언니에 이모, 삼촌, 할머니까지 등장시켜 이야기를 해 주고, 간지럼을 태우듯 온몸을 마사지해 주고, 아가 인형을 데려다 같이 재우기도 합니다. 그러다 먼저 엄마 아빠가 잠드는 척을 하면 “아니야~”라고 하다가 결국 쓰러져 잠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이 엄마가 "잠드는 척"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아이를 재울 때 내 머릿속에는 온갖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것들이 가득합니다. 보고 싶은 드라마도 있고, 끝내지 못한 일도 있고, 청소며 빨래도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요. 그런데 그렇게 잠이 들어 버리니 그 유명한 <선덕여왕>이며 <아이리스>를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네요. 며칠 전 남편에게 “나, 무슨 잠자는 공주가 된 것 같아.”라고 했더니, “나도 그렇긴 한데, 오히려 덜 피곤하고 일찍 일어나니깐 좋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뜻밖에도 그렇게 내게 새벽 시간을 선물했네요. 저녁 시간과는 다르게 새벽 시간에는 무언가에 집중도 잘 되고, 생각도 정리가 잘 됩니다. 축 쳐져 있던 몸도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개운해져 있고요. 끝내지 못한 일들도 좀더 능률적으로 끝마쳐집니다. 좀 엉켜 있던 감정도 훨씬 부드럽게 풀리고 온갖 걱정거리들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잊고 잠자리에 들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하지 못해, 할 수 없어 괴로웠던 하루의 짐을 그냥 내려놓고 잠시 쉬어야 할 때가 있나 봅니다. 요즘 아이를 재우며 픽 쓰러져 자기 일쑤인 엄마가 위안 삼아 힘을 내는 작지만 큰 깨달음입니다.
글 단행본편집실 송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