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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곰탕과 로맨스
kklist21 | 추천 (0) | 조회 (501)

2010-07-24 03:15

한 달 전쯤 친정엄마가 미국에 사는 동생네에 다니러간다며 짐을 꾸렸다. 연말이고 하니 좀 참을 만도 한데, 엄마는 온몸이 근질거리는지 빨리 떠나겠다고 성화셨다.

“아빠도 허락하셨어. 아빠께 밥 하는 법 가르쳐드리고 밑반찬도 넉넉히 해 두었으니, 넌 가끔 들려서 국만 끓여 드려. 알았지?”
엉겁결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사실 친정에 가끔 들러 아빠의 국을 끓이는 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근 2주는 마감이라 자정이 다 되어야 집에 들어가는 탓에, 친정에 가도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기 일쑤였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시판용 곰탕. 마트보다 싸다는 인터넷쇼핑몰에서 후기를 꼼꼼히 검토한 뒤 곰탕 16팩을 주문했다. 그러곤 한평생 부엌에는 물 마실 때 빼곤 발도 들여놓지 않으시던 아빠에게 설명해 드렸다.

“아빠, 이걸 하나 뜯어서 끓여 드세요. 대파는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소금과 후춧가루는 식탁 위에 있어요.”

결국 아빠는 50~60대 남성들이 가장 무섭게 생각한다는 곰탕을 날마다 드시게 되었고, 나는 국에 대한 부담감을 좀 덜게 되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아빠가 부쩍 수척해 보이는 게 아닌가. 아니, 단지 일주일 만에 흰머리도 늘고, 얼굴도 까매지신 것 같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한 번씩 가면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무엇보다도 이상한 건, 입만 열면 시작되는 엄마 얘기였다.

“너희 엄마랑 통화해 봤니? 난 어제 통화했는데, 곧 온대! 대한민국 남자들, 아내한테 잘해야 해. 난 사십 년 가까이 모르고 살았던 거 같다. 내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국에 오면 네 엄마한테 잘해 줄 거다.”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가 소중하다는 둥 하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날리다니 의외였다. 그런데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엄마도 예전과 달랐다. 예정되었던 한 달을 다 못 채우고 앞당겨 입국하겠다지 뭔가.

“아니, 손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셨잖아요. 기왕 가셨으니 여기 걱정 말고 더 쉬다 오세요.” 엄마는 손사래를 치셨다. “빨리 들어가야 해. 아빠가 들어오래.”

결국 일주일 앞당겨 입국한 엄마는, 공항에서부터 아빠 얘기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제 아빠한테 더 잘해야겠어. 아빠는 내가 오늘 들어오는 거 모르시지?” 한술 더 떠 서프라이즈 이벤트까지 기획해 입국을 하신 것이다.

며칠 뒤 주말에 집에 가자 두 분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하하하, 난 보일러 난방 온도를 계속 내리는데, 너희 아빠는 계속 올리지 뭐니.” “너희 엄마가 오니까 집이 사람 사는 거 같다, 얘. 그렇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너희 아빠" "너희 엄마"라는 단어가 왜 그리도 정겹게 느껴지는 걸까. 다시 시작된 두 분의 로맨스가 흥미진진하다.

글 《행복한동행》 박헤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