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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어깨에 힘 빼기
kklist21 | 추천 (0) | 조회 (541)

2010-07-26 22:38

띠링, 열심히 일하다 문득 본 모니터 한 구석에서 메일함이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메일은 되도록 즉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라, 하던 일을 잠시 두고 기지개를 켭니다. 몸과 마음을 잠깐 환기시킨 후 메일을 보니 저번에 검토를 부탁드린 원고네요. 아, 반갑습니다. 희고 검은 활자의 숲을 정신없이, 아니 정신 차리고 헤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이렇게 가끔 누군가가 불쑥, 그 흐름을 끊고 침입하는 것도 싫지만은 않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소통이니까요. 이렇게 메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나면 활자를 통해 저자와 소통하는 것도 또 새로운 마음이 되곤 합니다.

기한을 잘 지켜 주신 것도 기꺼운데 내용도 꼼꼼하게 잘 해주셨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정성껏 답장을 드립니다. 여러 가지 잘 짚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 내용이 이러저러 하니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이야기, 그럼 저번에 이야기 드린 대로 전자 계산서와 다른 사항들 알려 주시면 바로 결제해 드리겠다는 이야기, 아침엔 날이 밝더니 오후에는 날이 흐리다는 이야기, 마음만은 화창하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띠링, 메일을 전송하고 다시 원고를 봅니다. 어디까지 봤더라, 생각하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메일함을 다시 열어보니 아뿔싸! 이 분은 전에 제게 전자 계산서를 주겠다고 하셨던 그분이 아니신 겁니다. 오늘 들어올 원고가 두 개였는데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던 거지요. 어이쿠, 이 일을 어쩌나. 얼른 다시 메일을 적기 시작합니다. 첫 번 메일과 같은 우아함과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재빨리 실수를 사과드리고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합니다. “어쩌나,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아하하... ^^;”

그분은 오히려 재미있으셨다며 “ㅋㅋㅋㅋ”를 써 보내십니다. 살짝 긴장했던 얼굴이 풀어지고 웃음이 나옵니다. 조금 더 편한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누군가에게 한 번 웃음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제 실수는 충분히 보람(?)있는 것이 되었노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강사분이 그러시더군요. 행복으로 가는 첫 걸음은 삶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행착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요. 태어나 자라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결국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시행착오가 아니겠냐며 자신이 삶을 사는 동안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필요가 있다고요.

사실 누구에게나 처음 주어지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자기 앞에 펼쳐진 생은 아무도 밟아 보지 못한 미답지일 터.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서툴고 이제 막 세상을 향해 깨어나는, 아름답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일 터입니다.


글 단행본편집실 최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