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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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6 22:39
“책 마감했어?”
기자와 편집자로 살아온 지 어언 10년이 훌쩍 넘어서니 이제 제 지인들은 안부를 묻거나 약속을 잡으려 할 때 항상 "마감인지 아닌지"를 묻곤 합니다. 마감이라고 하면 야근은 기본이요, 때로 밤을 새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그중에서도 "마감"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단연 남편입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사실 그놈의 마감 때문에 초반에 좀 싸웠습니다. 대개 그러하듯, 한창 마음이 익어 갈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는데, 마감이 늘 걸림돌이었죠. 당시 격주간지를 만들던 터라 일주일 걸러 일주일은 꼬박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언제 끝나느냐, 언제쯤 끝날 것 같다는 대화가 오가는데, 그 "언제쯤"이라는 것이 항상 예상을 깬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월하게 일찍 끝날 것 같은 날도 변수가 수십 가지 생겨 결국 기대치를 무너뜨리고 마는 겁니다. 약속이 어그러지면 이내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고요.
그때 디자이너 선배가 “와서 보게 하라.”고 귀띔하더군요. 사무실에서 하루 저녁만 지켜보면 조금씩 이해하게 될 거라고요. 알고 보니, 그게 마감 인생을 사는 선배들이 터득한 연애 필살기더라고요. "그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기회이기도 하다는 말에 혹했습니다. 마침 그 선배 남자친구가 와 있어 잠깐 들어와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좋은 날을 만났고 역시나 효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선배 남자친구가 살짝 정신 교육을 한 덕분이기도 했겠지요.
글자 하나에 민감해져 있는 분위기며, 막판 디자인실과 편집실의 팽팽한 신경전까지 살짝 맛보고는 “도대체 언제 끝나느냐.”는 다소 신경질적인 질문은 “데려다 줄 테니 끝나면 연락하라.”는 지원으로 바뀌었지요.
그 지원은 다행히도 결혼한 뒤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젠 아이까지 챙겨야 하니 가끔 죽는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일이 늦어지는 날에는 마음 편하게 일하도록 알아서 척척척, 애를 써 줍니다.
바쁘면 보통 관계가 소원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바쁨의 현장에 상대방을 데려와 보세요. 오히려 서로를 향한 이해도가 훨씬 커질 겁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툼이 생긴다면, 관계든 일이든 한번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요. ^^
글 단행본편집실 송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