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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하 광장을 지나던 길이었습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고 주변에는 갖가지 패션 상품, 화장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들어서 있던 지하 광장.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밤늦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날도 11시 쯤 되었을 겁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피곤한 몸으로 무심결에 그냥 지나치다가 문득 냉장고 크기만 한 상자들이 길가에 이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 보니, 노숙하시는 분이 누워 있었습니다.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자 광장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끝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좋은 일 하는 분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하다 "추운 겨울에만 그러겠지." 싶은 생각도 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 얼어 죽을 것만 같은 추위가 수그러들 즈음에도, 여름에도, 그 이듬해에도 지하 광장의 밤늦은 풍경은 그대로였습니다. 그 광장을 꾸준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매번 피곤에 찌든 발걸음은 버스로만 향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달 독자 한 분을 만나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생각》의 오랜 독자인 그분은 격주에 한 번씩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눠주지 않는 날에는 다른 단체 사람들이 나왔고, 그렇게 광장의 하루하루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뜻밖의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노숙자 분들이 아이티를 돕기 위해 한 달 동안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 10만 원을 넘겼다는 겁니다.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사실 그깟 십만 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그 돈은 적지 않게 느껴지는 데다 집 없는 그들이 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 겁니다. 하루하루 살기 어렵다 생각하지만 그들만큼 살기 어려울까 싶은 생각에, 내가 사는 방식은 그들에 비해 지나친 사치라는 생각이 밀려 들었습니다. 이후 그 광장을 지날 때마다 내 눈은, 마음은 이전과 다르게 다가갑니다. "어떤 음식이 나왔지?" "오늘은 춥지 않아 다행이다." 내게는 십만 원이 여전히 크지만 마음이라도 다가설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게 시작일 테니까요. 글 《좋은생각》 김익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