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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지갑, 돌아올까요?
kklist21 | 추천 (0) | 조회 (476)

2010-07-27 22:13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누군가 가방 속에서 지갑만 쏙, 꺼내 갔습니다. 9호선이 개통되고 늘 편하게 앉아서 출근했는데 아침부터 살살 배가 아파 늦게 나오니 자리가 없었습니다. 식은땀이 줄줄 나고,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귀퉁이에 기대어 가까스로 서 있었지요. 얼마나 아프던지, 앉아 있는 사람들이 괜히 얄미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사람들이 그득그득 탔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누군가 뒤에서 자꾸 가방을 건드리는 것 같았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사실 배가 너무 아파 단속할 여력도 없었고요. 그런데 출근해,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 우유를 사려고 보니 아, 지갑이 없더군요. 설마, 집에 두고 왔을 거야, 하는 일말의 기대 가지고 엄마한테 찾아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도둑맞은 것, 맞았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 줄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만 해도 세 번이나 지갑을 잃어버렸죠. 감기 앓듯 주기적으로요. 택시에서 내리며 짐 챙기느라 선물 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지갑을 흘린 적도 있고요. 버스 안에서 여러 번 목이 뒤로 재껴질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던 어느 날은, 누군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지갑을 홀랑 가지고 갔습니다. 어쩜 그리 정신 놓고 자 버렸을까요.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마음 불편한 일입니다. 화납니다. 한 번 뒤돌아 볼 걸, 머리 쥐어박으며 자책도 합니다. 단순히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송두리째 도둑맞은 느낌…. 차곡차곡 쌓아 온 내 삶을 길바닥에 줄줄 흘린 기분이요. 욕심 부리며 채워 놓은 것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요. 사진, 카드, 무엇보다 다 채워서 공짜로 한 잔 마실 수 있는데 아까워서 고이 모셔 둔 커피 쿠폰들….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군가에게 힘내라며 커피 한 잔 멋지게 선물 할 걸요. 엄마 잔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갑도 잃어버리면서 몇 천 원만 넣고 다녀….” “날마다 지갑 잃어버리면서 이제 헌 지갑만 가지고 다녀.” “그러니까 지갑 잃어버리지, 가방을 앞쪽으로 당겨 매….”

휴…, 안 그래도 눈물 찔끔 나는데요. 너무합니다. 하지만, 여러 번 지갑을 잃으면서 얻은 것도 있습니다.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못했지만 상실, 조금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엄한 기대보다는 확실한 포기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늘 다짐하는 한 가지, 설사 무엇을 잃든지 덜 아깝게 욕심내 채우지 말고. 가볍게 비우고 살자고 마음에게 이릅니다. 그러면서도 바랍니다. 더 이상, 내 것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무엇이든요. 그리고 지갑도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글 《좋은생각》 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