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 추천 (0) | 조회 (463)
2010-07-30 20:15
“실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제가 쓴 글들을 책으로 낼 수 있을까요?”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간혹 본인이 쓴 글을 출간하고 싶다는 분들을 만납니다. 전화로, 이메일로, 때로는 직접 두툼한 원고를 가지고 찾아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잡지 《좋은생각》과 《행복한동행》이 만든 회사 색깔 덕분인지, 내 이웃 같은 아줌마 아저씨들부터 학생들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노크를 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그 글들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진솔한 마음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낱낱이 기록한 글을 읽으며, 세상의 정치나 교육 현실을 비통한 마음으로 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분들이 아닌지라 책으로 출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종이 값 인상이다 뭐다 하며 갈수록 힘들어지는 출판계 현실 탓이기도 하고, 우리 출판사와 잘 맞지 않는 글의 성격과 형식 탓이기도 하겠지만, 글의 진가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 "출판사 탓"도 클 겁니다.
혈기왕성하여 오만하기 그지없던 편집자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못 팔다니!” “이렇게 좋은 글을 못 알아보다니!” 괜히 "무식한" 영업부 탓, "우매한" 독자 탓을 하기 일쑤였죠. 하지만 한 권 한 권, 자식처럼 책을 펴내고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정말 쉬운 게 아니로구나, 싶은 게 솔직한 변명입니다. 흠, 때론 그 신중함 때문에 보석 같은 원고를 놓치기도 하지만요.
얼마 전에도 두툼한 원고와 그림을 들고 50대 어르신이 직접 회사를 방문하셨습니다. 본인이 오랜 시간 공부하며 쓴 글들을 내놓으며 어찌나 어려워하시던지. 아버지 같은 그분에게서 원고를 건네받는 제 손이 오히려 미안했습니다. 비록 우리 출판사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원고였지만, 그 손때 묻은 원고가 준 인상은 참 강렬했습니다. 원고지 10매 분량을 쓰기도 얼마나 힘든데, 그것의 100배나 되는 분량을 한 주제로 일목요연하게 써 내다니요. 그 인내의 시간이 새삼 크게 다가왔습니다.
뒤늦은 답변을 드리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도, 손때 묻은 그 원고에 담긴 시간과 정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랍니다. 그 거절의 편지가 그분 삶의 단 하나의 희망이라도 꺾어 버리지 않기를요. 단행본 편집실뿐 아니라 《좋은생각》과 《행복한동행》편집실에 정성껏 쓴 글을 보내는 많은 분들이 더욱 글쓰기에 매진하시기를요. 꼭 책으로 출간되지 않아도, 잡지에 글이 실리지 않아도, 글을 쓰면서 누리는 기쁨이 충만하시기를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원고를 세 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던 베스트셀러 작가 잭 캔필드 왈, “퇴자 맞지 않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없다”고 하잖아요. 당신들의 진가가 드러날 그날을 저 역시 응원하겠습니다.
글 《 단행본 편집실 》 송도숙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