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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무려 소쩍새와 천둥과 무서리를 이야기하는 시가 있습니다만,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할 때쯤 편집자는 이 책에 내 목과 허리의 통증 및 소화불량에 걸린 위장이나 침침해진 눈, 고민하다 빠진 머리카락이나 실수를 발견했을 때 등줄기로 서늘하게 흐르던 식은땀 등이 다 녹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찌뿌듯한 허리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니 뭉쳤던 근육이 풀립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살랑거리고 햇살이 따뜻합니다. 눈이 부셔 얼굴을 잠시 찡그리는데 문득 머릿속을 태양이 환하게 스치고 갑니다. 태양? 아, 태양! 그러고 보니 태양이 없이는 책을 만들 수가 없네요. 태양이 대지에서 나무들을 길러 내었기에, 고맙게도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종이에 적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태양뿐인가요. 바람과 흙과 물과 수많은 미생물들이, 그리고 나무 자신의 생명력이 이 책 한 권을 길러 내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고맙습니다. 무엇도 혼자 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요. 혼자가 아니지요.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믿고 원고를 맡겨 주신 저자부터, 잦은 교정에도 지치지 않고 늘 환한 웃음과 멋진 디자인으로 감동을 주시는 디자인 팀, 정확한 텍스트 해석과 정성어린 그림으로 황홀한 그림을 만들어 내시는 일러스트레이터, 이 모든 작업들이 구체적 물성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늘 힘써 주시는 제작팀, 의도대로 좋은 책 나오도록 수고해 주시는 인쇄소 분들, 완성된 책을 독자들 손까지 전달해 주시는 물류팀과 영업팀, 또 읽고 누려 주시는 독자 분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의 정성과 손길이 책 한 권에 배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디 책만 그런가요, 어젯저녁 제가 먹은 감사한 식사에 배어 있는 농부님들의 땀방울은 어떠하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신 건축가 분들의 노고는 어떠하며, 입고 있는 옷과 쓰고 있는 물건들을 만들어 주신 수많은 손길들은 또 어떠한지요. 새삼 내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선연해집니다. 어쩌면 저도 그렇게 작은 힘이나마 누군가의 생을 지탱하고 있겠지요. 다시 돌아와 보는 원고가 소중합니다. 앞으로 탄생할 책 한 권에도, 연필 한 자루에도, 내 삶에도, 온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생이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네요. 글 단행본편집실 최성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