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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어린이가 무서워!
kklist21 | 추천 (0) | 조회 (525)

2010-07-31 19:29

옛날 사람들은 호환, 마마, 전쟁이 가장 무서운 거였다지만 저는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답니다. 바로 어린이였어요. 왜냐고요? 어린 아이들은 솔직해서 제가 마음을 감추는 "가면"을 쓰고 있더라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이에요. 그 당시 저는 뭘 하던 자신이 없고 마음 한 편에 우울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런 어두운 모습이 타인에게 비춰질까봐 전전긍긍했어요. 그래서 "발랄함"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곤 했습니다.

대학시절 한번은 아르바이트 하던 레스토랑 사장님 댁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었어요. 그 집에는 8살짜리 여자애랑 5살짜리 남자애가 있었지요. 같이 간 동료 오빠는 아이들 무등도 태워주고 다정하게 말도 잘 거는데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쭈뼛거리고 있었어요. 사장님은 그런 제가 안돼 보이셨는지 “누나 심심하겠다. 누나한테도 좀 가봐.”라고 했어요. 그때 남자애랑 눈이 마주쳤어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저를 보고 아이가 그랬어요.
“이상해. 싫어.”

"어린이 공포증"이 생긴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아이 옆에만 있으면 이유 없이 긴장이 되고 표정이 굳어서 무서운 장승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변하는 제가 싫어서 되도록 어린 아이들 곁에는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어요. 대신 제 나이 또래나 어른들하고만 지내며 지나치게 예의 바르며, 싫어도 좋은 척, 어려워도 쉬운 척 하는 "사회 적응 형 어른"이 되어갔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어요. 아이를 무엇보다 무서워하는 제가 어린이 잡지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거든요.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부끄럽게도 "일은 일일뿐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점차 어린이를 위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을 밥벌이를 하기 위한 "일"로만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는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리거든요. 일에 대한 의무감이나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 책은 안 만드느니만 못했어요. 저는 더 이상 어린이를 두려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어린이가 쓴 글을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고, 어린이를 찾아가 함께 놀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알고 보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두려운 존재가 아니더라고요. 무섭기는커녕 천사같은 아이들에게 저는 매일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덧칠하지 않아요. 자신이 가진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기쁘고, 행복하고, 슬프고, 화난 감정을 표현해요. 그리고 가지고 있지 않는 것에 집착하거나 결핍감이나 좌절감에 빠져 삶을 허비하지 않아요. 욕심 부리지 않고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해요.

저는 아이다워지기로 했어요. 그래서 "어른답지 않게" 생각하려 해요.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뒤로 미룬 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신 나는 것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구태여 가면을 쓸 필요가 없네요.
사는 게, 참 재미있어요.

하루하루, "어른"이 되기 위해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 "어른아이"님들, 그러지 말고 그냥 "아이"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글 《웃음꽃》 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