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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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1 12:54
근 6년간 어깨선을 넘나들거나 그보다 조금 긴 기장을 반복하며 지냈는데 무슨 바람인지 미용실 의자에 앉자마자 짧게 잘라 주세요, 했습니다. 실연을 당한 것도, 신변에 큰 변화가 생긴 것도, 특별히 무언가를 바란 것도 아닙니다. 날이 더운 것, 그게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뭐 남들이 보면 절대 파격적인 길이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 딴에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익숙한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부담도 있고, 호기롭게 헤어스타일을 바꾸었다가 낭패를 본 이후로는 더욱 조심하기도 하고요.
스물다섯,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입니다.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하는 갈망^^에 우선 답답해 보이는 긴 생머리를 귀밑 1cm 정도로 짧게 잘랐습니다. 거기에 폭탄 맞은 듯 빠글빠글 요란한 파마도 하고, 한술 더 떠 좀 과하게 밝은 색으로 염색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한복 치마에 양장 재킷을 입은 듯 우스꽝스러운 모습…. 웅웅 귓가에 메아리처럼 스치는 “파마가 자연스럽게 잘 나왔네요. 마음에 드세요?” 하는 헤어디자이너의 말에 쓴웃음을 삼키며 조용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제 헤어스타일을 제가 못 견디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나 깨나 머리 생각으로 도무지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얼핏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지경이었죠. 결국 사흘 만에 다시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요란한 파마를 펴고, 검게 염색했습니다. 연이은 파마와 염색에 머리카락은 푸석푸석, 지갑은 텅텅…. 눈물 났지만 그제야 두 발 펴고 잠 잘 수 있었습니다. 휴….
그런데 이번엔 좀 다릅니다. 짧은 제 머리가 마음에 듭니다. 짧고 가벼워지니, 마음도 생각도 몸도 따라 경쾌해집니다. “어려 보인다.” “시원해 보인다.” “나도 짧게 잘라야겠다.” 등등 긍정적인 반응도 한몫합니다. 물론 “왜 잘랐어요? 예전 머리가 더 좋은데….” 말꼬리를 흐리는 후배도 있지만요. 하지만 누군가의 평가와 상관없이, 마음이 흐르는 데로 큰 고민 않고 저지른(?) 일이 기분 좋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종종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처럼 가볍게 선택해도 괜찮은 일도 생각만하다 그 기회조차 놓칠 때가 많습니다. 작은 후회의 불씨를 키워 마음을 다 태우며 큰불을 내는 경우도 많고요. 머리카락은 금세 자라겠지요. 제 마음이 그걸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글 《좋은생각》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