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 추천 (0) | 조회 (529)
2010-08-02 08:20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여동생으로부터 들은 경험담이다. 로스쿨 3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동생은 지방법원 판사 밑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판사가 그날 재판할 사건의 담당 변호사를 유심히 보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여자 변호사인데 감탄할 정도로 변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판사가 보기에는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 중 가장 뛰어난 한 명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생긴 동생은 관심을 가지고 법정에 들어갔는데 문제의 변호사를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스모 선수를 연상하게 할 만한 뚱뚱한 몸매에 의상이나 헤어스타일도 마치 자다가 바로 나온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이 유, 무죄를 결정하는 미국 법정에서 변호사의 인상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아무리 증거에 의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변호사에게 호감이 가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르다. 시드니 셀던의 소설《천사의 분노》의 여주인공 변호사가 법정에서의 옷차림에 대해“남자 배심원들의 눈길을 끌 정도로 아름답게, 하지만 여자 배심원들의 반감을 살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게.”라고 말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법정에 선"스모 선수"변호사는 동생의 예상을 깨고 배심원들의 찬탄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 사건의 피고인은 외투에 총을 넣고 다니다가 불법무기 소지죄로 체포된 사람이었는데 빌린 옷이라서 총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총이 얼마나 무거운데 주머니에 들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있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그 변호사는 바로 그 외투를 가져오라고 한 다음 직접 입어보면서 그 정도로 두꺼운 옷은 주머니에 총이 들어있어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검사의 말만 듣고 피고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배심원들은 변호사의 생생한 변론에 설득을 당했고 결국 무죄 평결을 내렸다.
졸업 후 변호사 활동을 위하여 정장을 구입하고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쓰던 동생의 친구들은 그 재판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변호사에게 인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이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을 보여 줄 때 인정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금태섭 님 | 변호사
- 《행복한동행》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