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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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09:37
조잘조잘 참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겐 수다스러운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부류다. 유머 코드까지 맞지 않으면, 기피 대상 1호로 분류된다. 후배 중에 그런 여자 애가 하나 있었다. 정말 말이 많아서 함께 있으면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싫은 사람을 만날 때 종종 그렇듯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 자리를 피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그 친구가 떠들거나 말거나 귓등으로 들으며 딴 짓을 하곤 했다. 무례한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의 부고를 접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누구나 자기보다 어린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면 삶의 허무를 체감하게 마련이지만, 그 아이의 죽음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건 소식을 전해준 이가 덧붙인 말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심장에 지병이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듣는데, 심장이 막 떨렸다. 그러곤 머릿속의 영사기가 마구 되감기더니, 수다 떨던 그 친구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말이 많았던 거로구나. 이해와 함께 죄책감이 밀려왔다. 지극히 짧은 삶을 살면서, 고작 이십대 초반의 그 친구가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길은 어쩌면 그 허다한 말들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 삶을 살아야 했다면, 그런 식으로 나의 존재를 붙박아 놓으려 했을 것이다. 외려 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내색 한 번 없이, 그토록 활기찰 수 있었던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건, 정말이지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그런 영웅적인 행동을 완전히 오해했던 것이다. 타인의 진심을 이해해 볼 여지조차 허락하지 않은 내 안의 어리석은 편견 때문에. 그리하여 이제는 미안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 하나를 생의 경험에 보태고 말았다.
상대의 어떤 행동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이면을 살펴보면 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사정을 헤아려 보기도 전에, 머릿속에 들어찬 편견에 따라 오해를 해 버리기 십상이다. 그게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봐라, 오해와 편견의 결과는 늘 이런 식으로 좋지 않다. 유한한 삶의 순간순간을 후회할 일들로 채워 넣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편견 따윈 그만둘 일이다.
구현 님 | 휴먼앤북스 편집장
- 《행복한동행》 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