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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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0 21:27
어느새 코와 입술 사이도 시커멓게 변했다. 서예 시간에 옆 자리에 앉은 아이가 말했다.
“미나미야마 군, 입 위에 먹이 묻었어.”
겨드랑이까지 털이 나기 시작했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물론 어른이 되면 몸 여기저기에 털이 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도 먼 미래의 일.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털이 많은 초등학교 5학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울고 싶어졌다.
몸의 이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원래가 학년에서 두 번째로 컸던 키가 5학년 1년 사이에 12센티미터나 자랐다. 어머니의 키를 훌쩍 넘어 버렸다. 남자의 성장이 절정에 이르는 때는 중학생 때다. 지금의 스피드로 자란다는 가정 하에, 가정시간에 배운 내용대로 계산하면 내 키의 최종 도달점은 2미터 40센티미터! 괴물이다! 너무 두려워서 계산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목소리도 변했다. 음악시간에 "저 목장에 늦여름 철이 오고" 노래를 부르는데 "늦여름" 부분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잠자리가 어느 날 갑자기 헬리콥터로 변신해 버린 것처럼. 그러다 결국 그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얼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입술 위의 털이 마음에 걸려 거울을 자주 보다 보니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얼굴에 뭔가가 잔뜩 나기 시작했다. 턱이 길어지고 둥그렇던 얼굴이 갸름해졌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조금 다르다는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 아닌가.
돌연변이. 연구소에서 배운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떨었다. ……
나는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일까. 뭔가가 내 몸을 빼앗아 간 것 같아 무서웠다. ……
책에 그려진 크로마뇽인의 얼굴에는 강인함과 기품이 넘쳤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백인의 조상치고는 피부가 검고 코가 펑퍼짐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예감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왜 내가 지붕이 있는 장소를 견디지 못해 고함을 지르고, 들과 산을 마구 내달리면 마음이 가라앉는지.
숲에서 동물을 잡으면 왜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한 기분에 젖어 드는지. 왜 가재나 개구리까지 먹어 치우는지.
어린 시절에 코끼리를 노란색으로 칠한 것도 설명이 가능했다. 나는 현대의 코끼리에 색깔을 입힌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빙하기 시절 태양 빛을 받아 온몸의 털을 번쩍이던 매머드였다.
이상 검증 끝.
시베리아의 빙하가 녹듯 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나는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다.
-《네 번째 빙하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