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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좋은생각 - 친구 '김황'에게
kklist21 | 추천 (0) | 조회 (500)

2010-08-10 21:28

김황, 지금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내가 너와 똑같은 이름으로 작가가 된 지 딱 10년이 지났어. 그동안 뭔가"큰일"을 해내면 꼭 너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베스트셀러는커녕, 유명한 문학상 하나 받지 못한 채 10년이 지났지. 게다
가 아직 세탁소 운영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하는 처지야. 허나 이번에"큰일"을 두 개나 해낸 뒤 네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어.

너는 내가 동화작가 노릇을 한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거야. 그야 그렇지! 우리 기억은 37년 전, 중급학교 1학년이던 1972년 7월에서 끊겼으니까.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심하게 싸웠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교토에 있던 우리 집 앞에서 한국학교에
다니던 너와 조선학교에 다니던 나는“박정희가 옳다.”,“ 김일성이 옳다.”하며 서로의 이념을 내세우며 싸웠지. 네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도 모르고….

내가 네 이름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이유는, 너에게 늘 고마운 생각을 갖고 있어서야. 너는 조선인이라는 걸 감추고 일본인"아오야마 요시가즈"로 살던 내 삶을 바꾸어 놓았거든. 초등학교 5학년, 네가 한국에서 전학 온 날을 나는 생생히 기억해.

너는 당당하게"김황"이라는 이름을 칠판에 쓴 뒤 자기소개를 했어. 조선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심한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던 시기에 네 행동은 기적 같았어. 키크고, 머리 좋고, 운동신경도 뛰어난 너를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를 거야. 내가 지금도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은 왼손잡이던 네가 그리워 열심히 훈련한 결과야.

6학년 때“조선인은 조선으로 가라!”라는 놀림을 받으며 왕따를 당한 나를 네가 구해 주었을 때 처음으로“나도 조선인이야.”라고 고백했지. 우린 곧 친구가 되었어.

그거 아니? 너와 일본 말이 아닌 우리말로 이야기하고 싶어서 중급학교부터 일본학교가 아닌 조선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김황! 난 이번에"큰일"을 해냈어. 여전히 일본에 있지만, 한국에서 새로 동화책 두 권을 출간했거든. 이전에 한국에서 펴낸 책은 번역자의 힘을 빌렸지만, 이번에는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우리말로 원고를 썼어. 비록 출간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
렸지만 말이야. 그리운 김황, 네가 어디에 있든 또 다른"김황"에게 작은 박수를 보내주겠지?

김황 님 | 동화작가

-《좋은생각》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