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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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1 22:01
갑작스레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많다. 산길을 오르다 가시넝쿨을 만날 때처럼. 그러나 길을 가려면 가시넝쿨을 옆으로 밀쳐놓아야 한다. 이런 난관을 만날 때마다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아버지의 두텁고 거친 손이었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러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 아버지는 쌀 한 가마니를 지고 함께 올라오셨다. 사촌 누님 댁에 며칠 동안 묵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친척이라도 신세를 지면 안 된다며 기어이 쌀 한 가마니를 둘러업고 나섰다. 쌀을 지고 경북 김천에서 서울 쌍문동을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아버지는 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고 마치 이를 꽉 물고 계신 듯 묵묵하셨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내내 아버지는 바깥에서 기다리셨다. 2교시가 수학이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아주 형편없는 점수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를 보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3교시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데 아버지가 내 손을 한 번 꼭 잡아주셨다. 두텁고 거칠기 짝이 없는 농부의 손이었다. 낫질을 하고, 지게를 지고, 벼를 베면서 거칠어진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놓고 들어가 다시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는 중간 중간 아버지의 그 손이 생각났다. 들과 산에서, 땡볕과 눈보라 속에서 수도 없는 낙담의 시간을 견뎌왔을 손. 아버지의 그 손이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의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후회 없이 해보라는 아버지의 말 없는 격려가 없었다면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내 앞에 있는 가시넝쿨을 옆으로 가만히 밀쳐 놓아 주신 셈이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무거운 짐지게를 지고 살아온 내 아버지가 보낸 격려였기에 더 눈물겨웠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고비와 내 아버지가 보여 주신 깊은 마음 씀씀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불교의 경전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과거도 좇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라. 과거, 그것은 이미 버려진 것. 미래, 그것은 아직 이르지 않은 것. 그러므로 오직 현재를 잘 관찰하라.”일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현재에 당면해 최선
을 다하고, 그럼으로써 내 눈앞에 펼쳐진 어둠을 조금씩 걷어 낼 뿐이다.
문태준 님|시인
- 《행복한동행》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