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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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2 18:29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이 있다. “난 행복한가?”
이 짧은 문장이 가끔 왜 이리 난해하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걸까. 혹 개념의 불확실성 때문은 아닐까. 사전을 뒤져 보니 행복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욕구 충족에 기한 만족감"이라 쓰여 있다. 이 겨울 안개 같은 막연한 개념을 계량적으로 표시할 순 없을까. 문제는 욕구와 만족감. 하기야 욕구를 분모에, 만족감을 분자에다 놓은 뒤 곱하기 100을 하면 행복의 정도를 백분율로 표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경우 분자에 해당하는 "만족감"을 늘리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분모에 해당하는 "욕구" 내지 "기대"를 줄이는 일은 쉬울 뿐만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별 부작용 없이 분모를 줄이고 분자를 늘일 수 있을까. 다행히 이 문제 풀이에 능한 이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 중남미 사람들이다.
중남미 사람들의 돈 버는 목적은 뚜렷하다. 즐기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선 셋 이상 모이면 고스톱을 친다지만 거기선 춤을 춘다. 돈을 벌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춤을 추기 위한 오디오 세트를 장만하는 일이다. 거의 매주 피에스타(Fiesta)라 불리는 파티에서 룸바, 차차차, 살사, 메렝게 등, 듣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이고 엉덩이가 실룩거리는 열정적인 춤들을 춘다. 생일, 결혼식, 국경일 심지어 제삿날에 해당하는 "죽은 자의 날"에도 기꺼이 춤을 춘다. 쿠바의 춤꾼 파파 몬테로는 죽을 때도 미소를 띤 채 죽었으며, 유언으로 “눈물 대신 신나는 음악을 연주해 달라.” 했을 정도다. 이에 악단들은 그의 장례식에서 그가 즐겨 추던 춤곡들을 신나게 연주해 주었다. 누구의 생일인지 누구의 결혼식인지 누구의 장례식인지는 중요치 않다. 식장에 참석하면 모두 하객이고 조문객이며 친구다. 왜일까? 왜 그들은 그리도 즐겁게 사는 걸까?
나 역시 샴페인처럼 넘쳐나는 행복을 중남미에서 느끼곤 한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 속에선 누가 "치즈"라고 주문하지 않아도 기꺼이 웃고 있다.
멕시코 유학 시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우리 속담을 스페인어로 설명하느라 무척 애를 먹은 적이 있다. 행복을 제철과일 따먹듯 하는 그들, 뱁새에겐 뱁새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따로 있다고 믿는 그들에겐 선뜻 와 닿지 않았던 걸까. 그들의 행복 공식의 분모는 이토록 작기만 한데 말이다.
구광렬 님 | 시인
-《행복한동행》200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