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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 사랑나무 전설
kklist21 | 추천 (0) | 조회 (522)

2010-08-16 12:31

내가 그 토끼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여름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혼자서 숲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그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입니다.
“별닦이, 예에, 별닦이가 필요하신 분은 안 계신가요?”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부츠에 작업복 반바지를 입은 토끼가 내 곁으로 왔습니다. 한 손에 양동이를 들었고 초록색 브러시를 어깨에 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토끼의 크기였습니다. 글쎄, 겨우 15센티 정도 밖에 안 되는 토끼였던 것입니다.

토끼는 영차영차 걸어와 외쳤습니다.
“별닦이가 필요하신 분~!”
신기하게도 토끼는 눈이 보이지 않는지 내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내가 저기요, 하고 말을 건네자 토끼는 애처로울 만큼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하긴 펄쩍 뛰었다고 해 봤자 자그마한 토끼의 걸음이니 기껏 30센티 정도였지요.
그리고 마침내 나를 알아본 모양입니다. 한참이나 눈을 깜빡이더니 토끼는 내게 말했습니다.
“어휴, 깜짝 놀랐네. 별닦이가 필요한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가 말하자 토끼는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할게.”
“앗, 잠깐만 기다려 줄래? 별닦이라는 게 뭐야? 묘한 직업인 거 같은데.”
“밤하늘의 별을 닦는 일이야.”
“그냥 그것뿐이야?”
“응, 그것뿐이야.”

나는 찬찬히 토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토끼는 겸연쩍을 얼굴을 하며, “아차, 장난을 치려던 건 아니야.”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 설명이 좀 부족했나 보다. 내가 이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한테 꾸중을 듣는다니까. 나를 알아봤다는 건 네가 틀림없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건데 말이야. 너, 누군가 마음에 두고 있는 아가씨가 있지? 나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을 닦아 주고 있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요즘 사랑스러운 숲지기의 딸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쩐지 마음이 소란스러워서 이런 밤 시간에 숲에 나와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하나 고르면 너를 위해 그 별을 닦아 줄게.”
그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사랑은 이루어지는 거라고 토끼는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별이 반짝이면 그 아가씨도 너를 좋아한다는 거야.”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