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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행복한동행 - 나를 나답게 만드는 무기
kklist21 | 추천 (0) | 조회 (451)

2010-08-22 17:52

나는 반장이나 부반장을 해 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 부분단장을 맡은 게 고작이었다. 선생님이 나를"부분단장"이라고 소개했을 때의 쑥스러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유신헌법 체제라서"학생회장"대신에"연대장"이라는 명칭을 썼고 이는 대학에서도 이어졌다. 교련복을 입고 전교생들 앞에서 우렁차게“충성!”을 외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올리는 연대장의 씩씩한 모습은 남자답고 멋있게 보였다. 이후 나는"리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학창 시절에 접했던 연대장을 떠올렸다. 나는 리더의 자질이나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중반에 접어들자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싶어 비정부기구에 들어갔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우며,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간부가 되었다. 새천년을 전후하여 마을을 누르는 송전탑을 뒤로 물리는 운동에 6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총체적인 방해 공작으로 300명씩 모이던 주민집회에 20여 명 밖에 모이지 않았고 지도부는 흩어졌으며, 나는“뇌물을 받았다.”“시장선거에 출마하려고 저런다.”는 등의 소문에 휩싸였다. 한심하고 분하여 한동안 발걸음을 끊었다.

어느 날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그분은 내가 없으니 일이 되지 않는다면서 조금만 더 고생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리더임을. 어린아이와 같은 할머니의 천진난만함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곰곰이 생각하면 송전탑
에 바친 세월 동안 나는 사자후를 토한 적도 없고 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이 나를 필요로 했다면 나는 학생회 간부나 군인 또는 정치가와는 성격이 다른 리더로 활동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한 행동은 주민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며 활동가들을 격려하거나 중구난방의 의견들을 집약하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합의점을 찾아내며 무심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설득형 리더는 군사적·정치적 리더와 사뭇 다르다. 서비스가 내 성격이나 재능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리더에 대한 자격지심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경쟁력은 도처에 널려 있다. 스타만이 리더는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속한 크고 작은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이 현대의 리더가 아니겠는가.

전재경 님|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이사

《행복한동행》201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