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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굿바이 쇼핑 - 지갑을 닫은 뒤에야 진짜 '선물'을 발견하다
kklist21 | 추천 (0) | 조회 (491)

2010-09-04 23:07

돈 안 쓰고 재미나, 돈 안 쓰고 유쾌함이나, 돈 안 쓰고 지위나 직업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도 얻기 어려운 마당에 돈 안 쓰고 중요한 선물을 주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아무리 예쁘고 앙증맞게 접어도 종이는 종이다 보니 충분한 애정 표현이 되지 못한다. (중략)

수프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는데 폴이 흥분해서 부엌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다. “이봐, 좋은 수가 생각났어. 당신이 아끼는 것을 세라한테 선물하는 건 어때?”

“맞아! 그거야!”나도 얼른 맞받아친다. 시인이자 인류학자인 루이스 하이드가 풍부한 상상력과 내용을 바탕으로 한, 마르셀 모스와 동일한 제목의 책 《선물 The Gift》에서 표현한 말이다. “선물은 주기 때문에 선물이다.” 하이드의 명제는 단순한 동어 반복이 아니다. 오히려 주는 행위에 대한 사회물리학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하이드는 말한다. 선물은 주는 자에게서 소멸되어 받는 사람의 손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중략)

나는 멕시코 풍의 나무 보석함을 꺼낸다. 윗면에 "기억해"라는 라틴어가 조랑말 그림 위에 새겨져 있다. 뚜껑을 열어 터키옥으로 장식된 은 목걸이를 꺼낸다. 엄마가 전쟁이 끝난 직후에 산 나바호족 원주민 목걸이다. 민속예술과 기하학적 아르데코, 골동품과 현대적 감각을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디자인이다. 20대 때, 엄마가 그 목걸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가 달라고 했다. 엄마는 선뜻 주셨다. 이제는 나도 거의 하지 않는다. 변색이 된 데다 걸쇠도 망가진 상태다. 그 목걸이에게는 새로운 삶이 필요하다.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해 세라한테 그 목걸이를 줘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엄마는 목걸이를 기억도 못하는 눈치다. (대를 이어 물리는 것이 고작 이 정도라니.) 그래도 그 목걸이는 나에게는 의미가 깊다. 가보처럼 느껴지는 물건이다. 게다가 푸른 터키옥이 세라의 파란 눈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수놓인 실크 조각으로 작은 주머니를 만들고 폴은 이제야 제 쓸모를 찾은 작은 마분지상자에 우윳빛 광택이 나는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붙인다. 그는 안에 넣을 얇은 천과 밖에 붙일 두꺼운 리본을 다림질한다. 나는 카드를 만든다. 폴의 친구가 목걸이 걸쇠를 고쳐주고 은에 광택을 내준다. 우리는 목걸이를 종이에 싸서 주머니에 넣어 상자에 담는다. 생긴 품새가 마치 작은 관 같다. (중략)

세라의 졸업식에 도착한 나는 그 아이를 한쪽으로 불러 선물을 전한다. 그 아이가 작은 관 뚜껑을 열고 목걸이를 들어올리자 마치 목걸이가 부활한 것 같다. 은이 세라의 얼굴에 환한 빛을 뿌린다. 미소가 번지고 눈이 동그래진다. 세라가 카드를 읽는다. 그 목걸이가 과거에 나의 어머니의 것이었고 나의 것이었으며, 이제 그녀의 것이고 어쩌면 언젠가는 그녀의 딸아이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오, 정말 예뻐요.” 세라가 속삭인다. 나는 그 아이의 목 뒤로 걸쇠를 잠가준다. 세라는 거울에 비쳐보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다. 밖으로 나온 세라의 얼굴이 환하다. 분명 감동받은 듯하다. “이제 내가 어디를 가든 고모와 할머니랑 늘 함께할 수 있게 됐어요.”

- 《굿바이쇼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