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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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07:53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UNHCR(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이라 쓴 간판이 나무 그늘 밑에 세워져 있다. 탄자니아 키고마 난민촌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한 아이가 큼직한 성인용 신발 윗부분을 끈으로 묶어 조이고 비칠비칠 걸어간다. 그러나 난민캠프 아이들 대부분은 맨발이다. 할 일도 없이 그냥 몰려다니고 있다. 그 와중에도 텐트에 옷이나 비누 등을 차려 놓은 생필품 가게가 있고, 약국도 있다. 피스프렌드의 난민촌 페스티벌을 도와주는 키고마 YMCA 스태프들이 깃발을 흔들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축제는 콩고의 토착 그리스도교라 할 수 있는 킴방구교 캠프에서 진행되었다. 인원이 천여 명에 불과하고 질서 유지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난민들이 진행하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출연하며, 또한 관객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축제는 먹을거리 때문에 더욱 신이 난다. 무엇이든 현지 조달이 원칙인 우리의 급식 지원팀은 키고마 시내를 뒤져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과 과일, 음료 등을 실어 왔다. 또한 난민 중에서 요리 팀을 뽑아 동아프리카 대표 음식인 우갈리와 수꾸마, 마칸데 등을 직접 요리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 손으로 만든, 너무나 역동성 있는 그들의 생명감과 끼로 채워진 페스티벌은 우려에 찬 시선으로 나를 보던 보수적인 UN직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면서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페스티벌이 끝난 늦은 밤, 나는 벽돌로 쌓은 관리지구 담 안에 제공된 텐트에 누워 UN경비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단잠이 들었다. 그리고 페스티벌이라는 짐과 긴장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아침이 되자 여러 사람의 눈동자가 차례차례 내 뇌리를 스쳤다.
영정사진을 찍어 주자 너무나 고마워하던 에이즈 환자, 아픈 아내를 위해 음악을 들려주던 사내와 그 순간에도 화장을 하던 가난한 여인,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춤을 추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던 청년이 거기에 있었다. 배고픔보다 모욕을 당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가장 힘들 때에도 남을 도우려는 인간의 자부심을 보여 주던 사람들. 아이 하나가 나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언제나 몽롱하고 졸린 듯한 나의 눈을….
황학주 님 | 시인·피스프렌드 대표
-《행복한동행》201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