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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좋은생각 - 존대하는 날
kklist21 | 추천 (0) | 조회 (459)

2010-09-11 00:04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초등학교 4학년 교실. 하루는 아이가 교문 옆 가로등 꼭대기에 매달렸다가 교장 선생님에게 들켜 학교를 발칵 뒤집고, 하루는 여학생 엉덩이를 손으로 치고 도망가 물의를 일으키고…. 하루하루 숨 돌릴 틈도 없이 화내는 정도만 심해진다는 생각에 나도 지쳐 갔다.

“우리, 이번 금요일은 서로 존대하는 날로 정해 볼까?” “네에?”
아이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 나를 보더니, 곧 재미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만약 약속을 어기고 반말하면 복도 바닥을 닦자고 자기들끼리 정하고 선생님도 예외 없다고 못 박았다.

금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서는데 조용했다. 자리에 앉아 책 읽는 아이, 사물함에서 수업 시간표대로 책을 정리하는 아이,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 이거야말로 딱 내가 원하던 교실 분위기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날 요 녀석들, 하던 선생님 인사가 다소 어색해서인지 아이들은 입을 삐죽이며 코 평수를 넓히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수민이만 끊임없이 얘기했다. 친구들에게 그림책을 들이밀며 “보세요, 이 그림 신기하지 않아요?” “민정 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자꾸 물었다. 친구들은 민망한 얼굴로 “그만하세요.” 했지만 수민이는 계속 말을 꺼냈다.

2교시 즈음 드디어 아이들의 말문이 트였다. 나한테는 평소 말하던 대로 해도 될 텐데 지나치게 의식해서인지 -시-, -까 등 극존칭을 사용했다. 친구들끼리는 "님" 이나 "학생" 을 붙여도 될 것을 "씨" 라 부르며 신 났다. 쉬는 시간에는 복도에 붙어 앉아 열심히 바닥을 닦는 애들도 보였다.

집에 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고 어수선한 틈에, 누가 싸운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로 존대하며 싸웁니까?” 하며 가 보니, 내가 온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싸웠다.

“수민 씨, 책이 넘어오지 않으셨습니까?” 구경하던 아이들은 진지하게 높임말을 쓰며 싸우는 두 아이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며 웃어 젖혔다.

오, 사, 삼, 이, 일, 땡! “ 아이고 선생님,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더.” “다시는 하지 맙시더.” 약속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 소감이 봇물 터지듯 나와 한동안 교실이 들썩였다. 이렇게 우리는 잠시 쉬어 간다.


박미연 님 | 김해영운초등학교 교사


-《좋은생각》201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