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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여행자의 유혹 - 짐바브웨에서의 버스 추격전
kklist21 | 추천 (0) | 조회 (496)

2010-09-11 00:05

우리가 탄 버스는 처음 설명과는 달리 "빅토리아 폭포"가 아니라 그 중간쯤인 "불라와요"가 종점이었다. 우리는 다시 미니버스로 바꿔 탔다. 12인승 버스에 20여 명이 끼어 타서 엉덩이가 사각형으로 변할 지경이었다. 감기까지 들어 콧물은 흐르는데 사기당한 가슴은 부글부글 끓고 조카는 배고프다고 보채고. 하지만 휴게소 상점에는 유효기간이 1년도 더 지난 과자 몇 봉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잘 달려가던 버스가 시동이 꺼지기를 수차례. 이제 배고픔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오늘 안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 주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그래도 창밖으로는 한결같은 아프리카 풍경이 이어졌다. 파란 하늘, 누가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은 뭉게뭉게 흰 구름, 듬성듬성 우산 나무들, 흙벽의 초가집과 맨발의 아이들……. 다시금 버스는 흐왕개라는 마을에 멈춰 버렸다. (중략)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버스는 여전히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그 사이 불라와요에서 우리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출발한 대형버스가 도착했다. 차장은 버스 정비를 포기하고 승객들에게 버스를 바꿔 타라고 했다. 요금은 자기가 대신 지불하겠다며.
세 번째 버스에 오르며 오늘의 불운은 이것으로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자 차장이 다시 차비를 걷는 것이 아닌가. 이런, 두 번째 버스 차장이 외국인인 우리들만 빼고는 승객들에게 모두 차비를 직접 환불해 준 것이다.
“으아~ @#$%& 나쁜 놈들!”

드디어, 하루 종일 참아왔던 분노가 터지고 말았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지기를 뱉어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운전사가 핸들을 180도 돌리더니 왔던 길로 쏜살같이 내달리는 것이었다. 승객들도 술렁거렸다. 동양인 여행자들의 억울한 사정은 순식간에 버스 전체로 퍼져나갔다. 승객들은 손을 흔들며 운전사, 아니 "정의의 기사"를 응원했다. 모자를 돌리며 환호하는 이도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벼르던 상습범들을 때려잡는 형국이랄까? 그날 버스 안 풍경은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악당을 잡으러 가는 클라이맥스처럼 진짜 흥분의 도가니였다. 우리들의 정의의 기사는 도중에 경찰서에 들러 정복경찰까지 대동하고서 아직 차를 수리 중이던 녀석들의 뒤쪽에 은밀하고도 날렵하게 버스를 들이댔다. 그러고는 멋지게 녀석들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이놈들, 한국인들 요금 떼먹었지!”

《여행자의 유혹》에 실린 양학용 님의 <짐바브웨에서의 버스 추격전>에서


*《여행자의 유혹》은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를 담은 좋은생각의 최신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