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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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0:58
재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한 시간 넘게 고민해서 일주일치 식단을 짜고 장을 봤더니 제법 그럴듯했다. 내심 만족해하는데 일곱 살난 손자가 식단을 읽기 시작했다.
“두부 된장찌개, 두부 부침, 두부조림…. 할머니는 만날 두부만 먹어?” “두부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싸니까 그런 거면서, 돈가스 먹고 싶어요.”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두부도 이미 서민 음식이 아니다. 두부 한 모가 200원이던 시절은 내 나이 서른 즈음인 25년 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두부 값이 오른 건 당연한데도 괜히 화가 났다.
그때 “드르르~.” 휴대 전화 진동음이 요란하게 방바닥을 때렸다. “○○보험 상담원입니다.” “보험이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다시 파득거리는 휴대 전화! “좋은 조건의 상품이 나와서….” “여윳돈이 없어요.” “고객님, 월 5만 원 정도만….” “저기요! 정말 여유가 없다고요. 2,800원짜리 두부 한 모 사서 찌개에 넣고, 나물이랑 무치고, 부쳐 먹으며 겨우 살아요. 한 모를 찌개에 죄다 집어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사 분의 일만 넣으며 산다니까요!” 얼른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담원이 말했다.
“고객님, 정말 야무지게 사시네요.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힘드시죠?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고객님처럼 살려고요. 힘내시고 꼭 부자 되세요. 여윳돈 생겨서 저축 생각나시면 꼭 전화 주세요.”
전화를 끊고 상담원 전화번호를 휴대 전화에 저장했다. 이름은"두부 한 모". 언젠가 경제적 여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두부 한 모 상담원에게 꼭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다.
김정옥 님 | 경기도 양주시
-《좋은생각》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