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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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0:59
111동 우리 아파트에는 엄마 아빠 없는 아이가 제법 많습니다. 한동에 이백 세대가 넘게 사니 그만큼 사연도 많은 임대 아파트입니다. 오늘처럼 하늘이 어둡고, 비바람 부는 날에는 어른도 밖에 나가기 싫은데 이른 아침 빗속을 뚫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학교 가는 길, 5층에 사는 예성이 우산이 거센 바람에 부러지고 말았답니다. 종이처럼 구겨진 우산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봤다는데 예성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은 학교 급식도 없는 날, 예성이 아빠가 바쁜 출근길에 도시락을 싸주며 방과 후 교실 가서 먹으라 했다는데 아이는 학교에도, 방과 후 교실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발을 구르며 불안해하고, 예성이 찾는 전화벨 소리에 우리 집도 한나절 분주했습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별의별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뉴스에 부모는 아이 손에 저마다 휴대 전화를 들려 주는데 예성이는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연락할 다른 방도가 없어 모두 가슴만 졸여야 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예성이를 찾았습니다. 부러진 우산을 들고 울며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아빠도 없고, 우산도 없고, 빗속을 뚫고 학교 갈 자신이 없자 문을 잠그고 빈집에 혼자 있었답니다. 겁이 나서 전화도 안 받고, 초인종 소리에 대답도 않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와 따뜻한 점심을 먹을 때 아홉 살 난 예성이는 혼자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슬펐습니다.
아파트 현관문을 닫아걸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현관문뿐 아니라 마음도 열지 않고 좀처럼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외롭게 살아갑니다. 아빠도 없고, 우산도 없다며 옆집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했어야 하는데 빈집에 혼자 있기로 결정한 아이의 선택에 쓸쓸해집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문득 어린 시절 학교 마치고 돌아와 빈집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내 모습이 예성이의 모습 위로 고스란히 겹쳐집니다.
지소영 님 | 방송작가
-《좋은생각》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