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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웃음을 통한 사랑의 치유자
kklist21 | 추천 (0) | 조회 (452)

2010-09-13 18:45

코메디언 구봉서

무대에서, 영화에서, 방송에서 항상 우리 곁에 따뜻하고 포근한 웃음을 선사하며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코메디언 구봉서 씨.

그는 그 어떤 위대한 정치인이나 경제인, 학자들 못지않게 이 땅의 사람들에게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연예인이다.

전혀 남을 웃기기에 부적합한(?)구수한 용모의 구봉서 씨가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까지는 타고난 재능 외에도 많은 역경과 시련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1926년 11월 5일 평양근교 선교리라는 곳에서 태어난 그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구봉서씨는 자신의 어린시절은 언제나 "교회의 십자가와 찬송가"가 함께 있었다고 회상한다.

특히 음악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의 품에서 사랑을 가득 받으며 성장한다.

어린시절부터 연예인 기질이 다분해 유치원 때 경성방송국 어린이 동화극에 출연할 정도였으며 국민학교 때도 학예회나 음악시간은 거의 그의 독무대라고 할 지경이었다. 그는 차츰 예능 방면에 인정을 받게 된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구봉서 씨는 해방직전 현제명 선생으로부터 음악교습을 받으며 세계적인 음악가가 될 것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1945년, 태평양가극단 대표가 악기를 들고 거리를 지나가는 그를 본 것이다. 아침 가극단 악기연주자가 사라져 사람을 찾고 있던 그 사람은 구씨를 악사로 오인, 3일간의 연주를 부탁한다. "3일만"이라는 조건으로 그는 개성의 태평양가극단 공연에 참가한다.

관객의 박수소리가 큰 힘을 주었다. 사흘 후 떠나려 할 때 그에게 대표는 3일만 더 일해 줄 것을 원했고 그 3일은 한달, 두달, 자꾸 연기돼 어느덧 정식 단원이 되었다.

그리고 극단에서 악기 연주를 하던 어느 날, 희극배우 대타로 무대에 오르며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아리랑"에서 웃기는 역할이었다. 생각보다 연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그는 관객들이 "아리랑"의 주연보다 웃음을 선사한 자신에게 더 많은 갈채를 보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점점 교만해졌다고 한다.

1950년 6·25로 서울은 공산치하가 되었고 그는 강압에 의해 공산군 선전연극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공산군들은 그에게 국군을 비방하는 코메디를 요구하며 북으로 끌려가게 된다.

제대로 기도한 적도 없던 그가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했다.

“하나님! 길을 열어주소서”

그는 기적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고 서울이 수복되어 해병대 내에 군예대에 들어가 도금봉, 남인수 씨 등과 위문공연을 한다. 또한 군예대 제대 직전 영화 출연도 하게 된다.

"애정 파도"와 "눈 내리는 밤" 이란 영화에서 조연급으로 웃기는 역을 맡는 그는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코미디 영화 "오부자"에서 막동이 역을 맡는 구씨는 "오부자"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영화 출연 쇄도 등 갑자기 유명해 진다.

“길을 가다가도 "야! 막동이다"하고 소리만 들리면 사람들이 사인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교통이 막히는 일도 있었지요. 인기가 정상에 치닫자 점점 교만한 마음이 생기더군요.”

매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자는 어머니의 바램도 저버리고 매일 밖으로만 맴돌던 구봉서 씨는 어느 일요일, 오후 영화촬영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폭발물이 터지는 곳을 피해 달려가는 연기를 하던 그는 촬영 전에 주의를 주었던 절벽 끝 모래를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병원에 실려간 그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였다.

또 한번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제발 내 다리 좀 살려주세요!”

다급해질 때만 기도가 터져 나오는 그에게 교회 사람들은 매일 찾아와 기도를 해 주었다고 한다.

병실에 기재를 가지고 와 프로그램 녹화를 하며 1년간의 병원생활을 한 그는 목발을 짚고 퇴원한다.

다리가 차츰 완쾌되자 교회를 등지고 그저 세상적인 즐거움 속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생겼다. 세상에 둘도 없는 어머니와 어버지의 사망이었다. 게다가 사업까지 부도가 났다.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던 그에게 코메디언 후라이보이 곽규석 씨가 다시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유한다. 그는 진정한 신앙을 갖게 되며 새롭게 태어난다.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죠. 그런데 교인들이 예배 중에 목사님 설교나 기도에 신경은 안 쓰고 자꾸 나만 쳐다보더군요. 눈초리에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예배를 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곽규석 씨, 배우 고은아 씨, 코메디언 김희자 씨, 가수 윤복희 씨 등 몇몇 연예인들과 교회를 설립하게 됐다고.

“믿지 않는 동료 연기자, 가수를 상대로 열심히 예수님을 알렸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는 자신이 오늘날 이 정도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끊임없는 "기도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나는 "웃음"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코메디계에서는 최고 원로가 된 그가 요즘 다시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코메디 프로에 등장하는 것은 다 그 사랑 때문이리라.

나름대로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가 될 수 있기까지에는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성실한 자세가 뒷받침 되었다는 것을 구봉서씨를 만나면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코메디언 구봉서라기 보다는 구봉서 장로라 불리길 원한는 그는 "웃음을 통한 사랑의 치유자"이기에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살아있는 것이다.

필자 : 미상님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3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