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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더 이상 어두워지지 말자
kklist21 | 추천 (0) | 조회 (443)

2010-09-14 19:09

도종환!

그이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보면 물빛·풀빛·햇빛이란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그에게서 물빛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그의 마음이 맑고 투명한 어느 깊은 계곡의 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며, 풀빛이라 함은 미풍에도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속삭이는 풀들 같은 여린 시가 그의 가슴 속에서 언제나 피어나고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햇빛이 떠오르는 것은 그렇게도 잔잔하던 그가 교육문제에 접하게 되면 마치 투사가 된 듯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좋은생각」을 들고 청주의 어느 다방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서울에서, 그것도 어떤 중요한 회의를 하다 급히 내려 왔는데도 정확히 도착한 것을 보고 그가 세상을 긴장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접시꽃 당신」으로 우리에게 한없는 애잔함을 전해주던 그가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찾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참교육」의 의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4년 전에 청주 중앙중학교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지고 해직교사가 되었습니다. 감옥에도 갔다 왔고, 지난 2월에는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벌이다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물빛·풀빛 같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시리고 아팠을까요.

「좋은생각」을 내밀자 그는 잃어버리고 있다가 반갑게 찾은 듯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업 시작 전 학생들에게 매일 마다 예화 하나씩을 들려주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예화를 모아두었다가 그 날에 맞는 것을 골라 들려주었지요. 학생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았습니다. 심지어 등록금 납부 이야기도 말로 하지 않고 비슷한 예화를 소개하므로 해결했습니다.”

획일화된 지식보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언제나 제자들에게 시를 가르쳤고, 가난한 학생을 보면 월급을 털었으며, 아픈 학생이 보이면 집으로 찾아가 위로하고 함께 아파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요.

그런 선생님의 사랑과 헌신을 몸으로 느낀 학생들이 그를 누구보다 존경하고 따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돈 봉투가 오가고, 온갖 지시로 획일화된 교육풍토 속에 학생들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4년간의 침묵을 깨고 새 시집「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이번에 펴내었습니다. 89년 교육을 주제로 한 시집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을 출간한 바 있지만 서정시집으로는 「접시꽃 당신」이후 처음인 이 시집에는 해직, 재혼 등의 삶의 고비가 깨달음의 언어로 승화되어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에만 지나치게 매달려 시가 작품의 꼴을 갖추는데 소홀했다는 반성을 토대로 부족하나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서정시를 추려 보았다”고 하면서 그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폭설」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먼지를 털고/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내 가슴속/빈방을 새로 닦기로 했어요/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내 사랑 누군가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꽂히기 보다는/소리 없이 내려서 두텁게 쌓이는 눈과 같으리라고 느꼈어요/……/내가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그것은 다시 삶을 사라해야 한다는 것이며/더 이상 어두워지지 말자는 것이었지요.』

「접시꽃 당신」의 슬픈 시인으로 기억되는 도종환 님이"더 이상 어두워지지 말자"고 하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결 건강해진 그에게서 우리는 물빛·풀빛·햇빛 이외의 또 다른 "좋은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님이기 때문입니다.

필자 : 정용철님 발행인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3년 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