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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나무는 보되 숲을 못본다"는 말이 있다. 부분에 치우쳐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전체에 집착해서 부분을 헤아리지 못하는 "숲을 보되 나무는 보지 못한다"는 말도 있을 법하다. 사람들의 모듬살이에서 전자는 개인주의, 후자는 전체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우리네 모듬살이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게 가능한가? 그런 눈,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좋은 사람"이 있는가? 먼 나라,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하늘 밑, 같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으로 말이다. 대답은 "그렇다"이다. 더러는 알아보는 눈이 없어, 또 더러는 사소한 결점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나무를 통해 숲을 보고 개인을 통해 인간의 숲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개인적인 체험과 사색의 기간을 넘어 역동적인 힘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좋은 사람들". 그들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으로 함세웅 신부가 있다. 사람을 통해 인간의 숲으로 간 사람. 함세웅 신부가 걸어온 삶의 여정을 듣노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외아들로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틀을 깨고 신부가 된 것이며, 그의 이름 앞에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며 인권을 옹호해온"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과정을 들어봐도 그렇다. 교부학에서 해방신학, 여성신학으로 끊임없이 확장해온 그의 학문적인 관심을 봐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신부님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위령성월이라 묘지에서 미사를 하는데 신부님을 도와 복사를 했지요. 분위기 탓인지 죽음이란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오면서, 삶에 대한 질문이 터져 나왔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때 내게는 신부가 가장 의미 있는 삶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사제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성신고등학교. 노는 시간에도 성당에 가서 놀았던 이 시기는 그가 사제로서, 교수로서, 또 사회정의의 일선에 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실천력"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던 그가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1974년, 유신정권을 반대하던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면서부터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고하게 구속된 학생과 그들의 어머니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정치구조에 대해 사목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7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어떤 공직자 한 분이 술에 만취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다섯 식구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데 월급만으로 생활하기는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업무와 관련해서 상납을 받고, 어떤 때는 억지로 요구하는 등 죄를 짓는데, 고백성사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답니다. 고백성사는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는 참회가 앞서야 하는데 돌아서면 또다시 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일을 통해 함세웅 신부는 개인과 사회구조의 관련성을 확인했다. 양심껏 살 수 없는 사회구조에서 양심껏 살라는 개인의 의지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작업을 병행해나가려는 노력은 그에게 해방신학과의 만남과 두 차례의 투옥, "정치신부"라는 일부의 비난을 불러왔다. 그가 지학순 주교사건을 계기로 교회의 문을 세상을 향해 열고 활동한지 올해로 정확히 이십년, 긴 세월을 끊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실천에서 오는 힘"이라고 답한다. 함세웅 신부를 가까이서 만나본 사람들은 두어 차례 놀라움을 경험한다. 첫 번째는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지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싹싹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며, 고유의 직관력으로 사람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그의 개방적인 자세인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거절하지 않는다. 자기를 열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바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구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주교 장위동 교회의 주임신부로, 매주 두 번 성심여대에 출강하는 강사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가운데 요즈음 함세웅 신부는 「민주항쟁 기념사업준비 국민위원회」 일로 더욱 바쁘다. 이 모임의 취지에 대해 함세웅 신부는 이렇게 밝힌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직자 재산공개, 뇌물수수자 처리 등 일부 변화가 있지만,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광주 사태가 아직 미결로 남아 있는데, 도덕성의 회복이란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 모임은 참된 개혁의 바탕은 도덕성이라는데 뜻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도덕"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필자 : 서미애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3년 0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