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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또 다른 나를 찾아 오늘도 뜁니다 - 배우 유인촌 님
kklist21 | 추천 (0) | 조회 (463)

2010-09-16 07:54

배우라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슴속에 심고 숨겨진 자신을 찾아 열심히 뛰는 유인촌. 그의 땀방울이 튀는 뒷모습을 영락없이 묵묵히 땅을 일구는 김회장댁 둘째, 용식이다.

친근하면서도 결코 지겨워지는 때가 없는 배경음악과 함께 너른 논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군들의 모습. 마을 어귀에 선 아름드리 나무밑에서 땀을 식히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마을노인들이 다음 장면을 잇고 나면, 김회장댁 마당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그날의 얘기가 시작된다. 농촌의 현실에 불만을 느껴, 때론 뛰쳐나가고 싶지만 가슴 깊이 심지를 세우며 묵묵히 흙을 파는 김회장댁의 둘째아들 용식. 드라마 「전원일기」가 13년 가량 어김없이 시청자들 앞에 찾아드는 동안 배우 유인촌은 불혹의 나이에서 세 해를 더해야 하는 중년이 되었다.

“배우를 비롯한 대중연예인들을 광대나 딴따라 정도로 인식하는 풍토는 개선되어야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남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적 역할도 있지만, 현대생활에서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에서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정신문화를 계도하는 막대한 임무도 주어져 있습니다.”

드라마를 위한 분장을 막 끝내면서 유인촌은 자신의 직업관을 펼쳐보였다. 그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확고한 직업관과 신뢰감가는 이미지, 짙은 눈썹아래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 때문인지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그의 배역은 진지하고 의지가 굳은 인물이 많았다.

“90년도부터 92년 12월까지 2대 방송연예인 노조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시대의 거울이라 할 수 있는 연예종사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 사회투영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오랜 저의 소신 때문에 맡아나가게 되었죠. 연예인의 권익옹호를 요구할 뿐 아니라 연예인 스스로가 고민하는 자세,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처음 그가 선거에 나섰을 때, 배우로서 아쉬울 것이 없는 그가 왜 그런 짐을 지려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은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늘 깨어있고, 성실한 그에게 보이지 않지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배우 유인촌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6남매속에 끼여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몰려다녔고, 고교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배우의 길을 결심하였다. 열두살위인 맏형이 연극을 하고, MBC PD의 길을 걸었는데, 덕분에 연극대본과 관련서적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집안식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선택했고, 3학년때인 74년 MBC TV 탤런트 6기로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가 좌절을 모르는 연기자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 데뷔시절 그는 실패를 거듭했고, 군을 제대하고 브라운관을 복귀한 78년 이후부터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자신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80년 2월부터 록오페라 「슈퍼스타예수그리스도」, 「에비타」, 「한네의 승천」등 꾸준히 뮤지컬과 연극무대에 섰으며, 올해 초에는 연극 「햄릿」에서 4번째로 햄릿 역을 맡기도 했다. TV드라마가 갖는 틀에서 벗어나, 어느 한 곳 가릴 수도 속일 수도 없는 커다란 무대위에서 그의 배우기질은 더욱 유감없이 발휘된다. 만능배우로서 그의 능력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공연을 위해 현대무용과 펜싱 등을 배우고, 사극을 위해 승마를 3년간 익혔다.

그러나 선량한 배역만이 그의 연기폭의 전부는 아니다. 건달이나 신분상승을 위한 계산적인 냉혈한, 출세지향적인 검사 등 그의 야누스적 변신은 한계가 없다. 영화 「연산일기」에서 연산군의 내면연기가 뛰어났다는 평 뒤에는 신경정신과 교수를 찾아가 자문을 받는 그의 성실한 노력이 숨어 있었으며, 영화 「김의 전쟁」에서 멋진 액션연기는 사실감을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도 대역을 쓰지 않는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의 결과이다. 그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고 선이 굵은 연기를 완벽히 소화해 내는 찾아보기 드문 배우이다.

“TV의 역할, 그중에서도 사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그 교육적 역할은 국사교과서 못지않게 큽니다.”

그래서 그는 숙종, 연산군, 주시경 등 그가 맡은 인물은 재창조, 재해석하고자 노력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고종의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조광조, 정약용 등도 재창조하고 싶은 인물이죠”

그는 서른 셋에 늦장가를 들어 5살 10살인 두 아들과 성악가인 부인을 두고 있다. 그의 부인이 예술가로서 더 많은 능력을 갖게 하기 위해 2년간 로마유학을 권유하고, 두 아들을 보살피며 홀아비생활을 자청한 미담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는 수준급의 배우가 된 요즈음도 연극공연을 준비하면 술, 담배도 끊고, 자신의 숨겨진 어떤 모습을 찾기 위해 가장 극한상황을 연출하려고 뛰면서 대사를 외우기도 한다. 숨이 턱에 받쳐서도 대사를 또박또박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모범적인 연기자상을 정립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멋과 열정을 더해가는 유인촌, 녹화장을 향해 뛰는 그의 등뒤로 굵은 땀방울이 튀는 듯 하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