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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박정자님 ·1942년 인천 출생 ·1962년 이화여대 신문학과 입학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 입사 ·1966년 극단「자유」창단 멤버 연극「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신의 아그네스」「굿나잇 마더」등 90여편 연극에 출연 백상예술대상, 동아연극상 등 수상. ·현재「내 사랑 히로시마」출연 중. 너무도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극배우 박정자를 만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약간 두려움을 지닌 채 그에게 다가선다. 생각보다 자그마한 체구와 상냥한 몸짓, 성실한 눈빛을 지닌 그와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왜 그토록 지독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후회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생각을 전하자 그는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를 만난 곳은 연극「내사랑 히로시마」의 오후공연을 앞둔 시간에 토 아트홀 뒷편 분장실이었다. 무대위에서 입었던 의상과 분장을 바꾸지도 못한 채 거울앞에 앉아있던 그는 이번 연극에 대해 “그전까지의 배역과 성격이 전혀 달라 흥미롭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자를 나 자신이 얼마나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시험해 볼 기회지요. 기획제작단계에서부터 참여했으며, 여름내 연습을 진행해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연극배우로서의 명성이 어느 정도 굳어진 지금까지도 그는 늘 진지한 자세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해 왔다. 일상의 자신과 무대위의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해 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살아온 배우 박정자. 세상이라는 무대위에 연극배우 박정자의 배역을 부여받은 그는 자기역할을 다하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껴안고 뒹굴며 살아오는 동안 이제 오십의 나이가 되어 있다. “연극은 관객에게 나의 모두를 주는 나의 제사고 기도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그이기에 무대밖의 모든 행위와 모든 만남도 그에게는 한편의 작은 무대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도 졸지에 상대배역을 맡게 된 어설픈 배우가 되어 흥분과 감격을 맛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골목골목에서 연극이 하나의 놀이로 진행되곤 했지요. 알전구를 켰다컸다 하면서 엄마의 치마를 몰래 들고나와 막으로 사용하곤 했는데 이것이 내 생애 최초의 무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942년 인천에서 태어난 박정자는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신문학과에 입학했다. 어린시절 당시 극단 신협에 몸담고 있던 큰오빠를 따라 연극구경에 신바람이 났으며, 감수성 예민한 중고교시절을 거쳐 대학에 들어갔던 그이기에 무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갈망은 자연스레 한줄기 불꽃으로 치솟았다. 연세대생들과 합동무대도 꾸며졌던 대학극시절, 박정자는 어려운 시대에 배우의 길이 쉽지만 않다는 것을 체득했고, 1966년 극단「자유」창단멤버로 시작해 지금까지 90편 넘는 연극에 출연한 연극꾼으로 살아왔다. 세상이라는 무대위에 연극배우 박정자의 배역을 부여받은 그는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껴안고 뒹굴며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오십의 나이가 되었지만 스스로 연극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서나 세상속에서 한치의 물러섬 없이 더욱 땀흘릴 것이다.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입사해 성우로 활동도 했죠. 최근 인어공주라는 만화영화의 바다마녀의 목소리는 흥미로운 배역이였기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연극배우로서 완성된 자신이 유일한 내 삶의 목표입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위기의 여자」,「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굿나잇 마더」등이다. 그의 주변에는 무수한 팬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에서보다 작품속에 인물들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난다는 그는 천상 연극인일 수 밖에 없다. 연극에 대한 무지막지한 짝사랑과 도전으로 힘든 세월을 버텨온 그이지만 한국 연극배우치고는 드물게 행운을 누려왔다. 그동안 백상예술대상 입상 4회, 동아연극상 3회, 극평가 그룹상 2회, 서울신문 문화대상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무엇보다 2천5백여명의 박정자 관극회원을 가지고 있다. 또 반평생 무대를 지켜온 직업배우의 자존심이 발단이 돼 만들어진「꽃봉지회」는 연극표사주기운동, 관객개발운동이라는 그녀의 의지를 함께 실현시켜주는 든든한 동지들이다. 그녀는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장기공연시 다과를 준비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손수 마련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극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생각입니다. 제 자신도 연극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너무 값싸게 상품화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더욱 무대에서 땀흘릴 각오입니다.” 그는 최근에 배우 박정자의 서푼짜리 고백이라는 부제를 단「사람아, 그것 운명이야」라는 책을 수줍게 내놓았다. 거기에는 그녀의 연극만큼이나 진지한 삶의 태도와 진솔함, 감수성 등이 담겨져 있다. 한편 그녀는 광고업을 하는 남편의 아내이고 두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내년 초 손숙 씨와 함께 할 연극「제인에게 생긴 일」을 준비해야 하고, 그와 그의 연극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3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