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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찬종 님 “아름다움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름"에는 "안는다"라는 뜻이 담겨 있고 "다움"에는 "원래 생긴대로, 본질에 가깝게"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본질을 유지하고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해야지요. 본래의 모습을 찾는 아름다움을 간직해야지요” 불쑥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자, 얼른 떠오르지 않은 듯 한참을 생각하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찾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갈등」이라는 짐을 지우고 있는 듯하였다. “그렇습니다. 나와의 끝없는 싸움이지요. 언제나 국민 편에 서서 깨끗한 정치, 희망의 정치를 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그가 자기와 했다는 약속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4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3대 민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야당후보의 선거사무장 일을 하고 계셨지요. 그런데 당시 나의 어린 생각에 "어째서 우리 아버지는 국회 의원이 될 수 없고 저래야 하는 것인가…"하는 의문과 함께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가난하고 탄압받는 사람 편에 서서 잘 할 수 있을텐데…"하는 결심이 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법대로 가서 변호사가 되고 저명인사가 된 후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려면 12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후 경기고등학교,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나왔고, 사법고시·행정고시·공인회계사에 합격하였으며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이 되었다. 12년이 아니라 7년을 더해 19년이 걸린 셈이다. 그가 계획보다 늦게 국회의원이 된 데에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7년의 공백을 메우는 사건이란 바로 연애사건이다. 고등학교 청소년 서클에서 만난 한 여학생이 그를 완전히 휘어잡아 버렸고 그를 애타게 만들었다. 줄기차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심지어는 그녀가 KBS아나운서 시험과 기자시험에 합격하자 면접장으로 찾아가 "이 사람은 며칠 있다가 나와 결혼할 사람이니 합격시키지 마시오"라고 훼방을 놓고 다닌 것이다. 물론 그녀는 입사시험에 떨어졌고 대신 결혼에 골인했다. 물론 이 연애사건이 그의 계획을 연기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당겨 주었다는 것쯤은 모두다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박찬종 의원을 만나러 간다고 사무실을 나서자 회사 직원 한 사람이 “"바바리 코트"를 입고 가세요.” 박찬종 하면 바바리 코트가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의 정치역정은 바바리 코트의 느낌 그대로이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서울역 광장에서도 어느 구석진 시장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그는 미색 바바리 코트를 입고 연설을 하고 서민들의 손을 잡았다. 자신을 권위와 위선으로 덮지 않으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친숙함을 느끼게 하고 활달한 모습, 자유로운 모습도 함께 전하는 바바리 코트의 느낌. 그러나 어디 그의 삶이 바바리 코트에서 머물렀던가?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삭발투쟁, 5공청산 대타협을 거부하는 15일간의 단식투쟁, 정풍운동으로 인한 국회의원 제명, 무소속 출마 봉쇄, 고대앞 사건으로 인한 출국금지와 변호사 업무 정지 등 그는 차라리 알몸으로 칠흑의 어둠 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리고 5선 의원 대통령후보를 두루 거친 1994년의 박찬종 의원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국제화 시대에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치의 품질을 높혀야 합니다. 고품질의 정치가 아니면 어떤 경쟁력도 강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의 원가를 높여주면 안됩니다. 원가가 높으면 품질에 비해 가격이 높아지니까요. 원가가 적게 들고 품질이 높은 정치가 되어야지요. 선거비용을 적게 들이고 고품질의 정치인을 뽑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합의한 선거규칙이 잘 지켜지면 될텐데…” 어느 땐가 한 기자가 물었다. “대표께서는 92년 대선 때 기탁금 3억원을 마련못해서 등록직전까지 애를 먹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돈도 조직도 없다면서 다시 출마를 결심한 배경이 무엇입니까?” “나는 내 딸을 믿어요! 내 막내 딸이 「재활(再活)의학」을 전공한 전문의니까 나는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어요.” 아름다움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살아난다. 아니 언제나 살아 있다. 깨끗한 정치인, 무균질의 박찬종 의원이 봄날의 느낌으로 우리곁에 다가와 더 푸르른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는데…. 마지막으로 「좋은생각」은 어떤 생각이냐고 물었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 부끄러움이 가장 큰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은 생각입니다.” 필자 : 정용철님 발행인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4년 03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