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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오래된 책
gura892 | 추천 (0) | 조회 (476)

2010-09-25 11:56






일요일, 제리는 교회에 가고 집에는 니카무라 할아버지와 내가 남았다.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언제나 가난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가난하다"며 할아버지가 농담처럼 말했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 든 사람의 농담은 그 속에 몇 겹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니카무라 할아버지의 집에는 새것이 거의 없다.

벽지가 오래되어 떨어져 나가도 그는 새것으로 애써 교체하지 않는다.

자신은 로우(low)의 삶을 지향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가난하면 감사할 기회가 훨씬 많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지향점은 하이(high)가 아닌 로우(low)라고 한다.





일본은 물건들이 너무 많고 값이 싸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데,

과거 원하던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돈이 모이면

그 물건을 사면서 기뻐하던 감동이 이제는 없어졌다고 한다

한번은 물건을 주문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전화가 걸려와 받아보니 배달원이 벌써 집 앞에 도착했다는 전화였단다.

할아버지는너무 완벽하게 편해진 이런 우스꽝스런 시스템이 싫다고 했다

기다리는 기쁨, 그리고 물건이 늦게 오면 화를 내기도 하는 인간적인 것들을 그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가만히 그의 거실에 앉았다

모든 사물들이 잠에 빠져든 듯 조용하다

낡은 라디오를 켰다 다시 끈다 너무 소란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책이며 그릇이며 가구들을 둘러 보았다

가운데 부분만 투명한 것으로 갈아끼운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은 할아버지의 35년 된 스탠드, 40년 된 소파, 20년 된 찻잔위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런던산책 / 박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