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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인생의 작은 그릇 속에 영원을 담는 사람
kklist21 | 추천 (0) | 조회 (374)

2010-10-02 15:39

작가 박완서 님

“글쎄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요러저러 했다는 구먼”하며 곁에서 생생하게 얘기를 들려주는 느낌, 그의 소설을 읽는 많은 이들은 책 속의 문자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그런 느낌에 곧잘 빠져든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기만의 문학적 향기를 지니고 있으면서고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는 작가는 드물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 되버린 지 오래다. 최근 발간된 작품집 <한말씀만 하소서>도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고 있다.
“이 작품집을 낸 뒤에 제가 당한 개인적 불행에만 흥미를 보이거나 제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말씀만 하소서>가 일기라는 형식을 취한 문학작품의 하나로 읽혀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제 개인의 불행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한 넋두리가 아닙니다. 일기라는 형식속에 어떤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했으니까요.”
<한말씀만 하소서>는 88년 남편의 죽음 뒤에 연이어 외아들을 사고로 잃은 박완서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의 기록이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에는 아들을 잃은 어미로서의 본능적이고도 맹렬한 슬픔, 자신을 불행 속에 던져버린 신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 붓는 원망과 저주, 그리고 다시금 삶의 의미를 되찾고 아들없는 세상에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최근들어 강한 부정의 과정을 통해 신의 존재와 존재이유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우리집에는 카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작은 십자가상이 하나 있죠.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은 뒤, 가장 많이 원망을 받은 직접적인 대상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문득 그 십자가상에서 "오냐, 실컷 욕하고 원망하고 나를 죽이려무나, 네가 그럴수 있으라고 나 여기있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듯한 슬프고 너그러운 그분의 표정을 생생하게 읽었습니다. 인간에게 신이 없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원망을 쏟아 놓을 대상도 없어지겠죠.”
올해로 예순 넷의 박완서. 그는 나이 사십에 장편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발을 내디뎠던 늦깍이 작가였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섯 남매 뒷바라지 하면서 살아온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으로. 그러나 그의 글은 통상 여성작가들이 지닐 수 있는 소위 여류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경지였고, 이후 24년의 작가생활 동안 쉼없이 우리문학사에 길이 그 의의가 남을 만한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특히 <휘청거리는 오후> <살아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의 작품은 여성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저는 늘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이 넘치고 넘칠 때 비로소 펜을 들 수 있었습니다.”
이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여성의 삶을 가장 정직하게 형상화할 수 있는 작가로 꼽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자들 중에 문학의 길에 뜻을 두는 이가 있다면, 먼저 결혼이든 연애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든 어느 한 시기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도 문학의 큰 밑천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관념으로 이해하고 써내려간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겠죠. 실질적인 삶의 무게를 쌓고, 쓰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것 같은 시기를 기다려 작품을 탄생시켜야겠습니다.” 라고 그는 말하면서 삶에 있어서 장식의 일종으로 문학을 선택하거나 이름을 날리기 위한 발표에 급급해 작품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쓰고자 하는 욕망이 목끝까지 차오를 때를 기다리며 일상의 무게를 쌓아가는 미덕.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독보적인 무게와 색을 지니게 해주는 근원적인 힘이기도 했다.
폐암으로 투병끝에 세상을 떠났던 남편과의 사연은 그의 단편 <아홉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에 투영되어 있다. 딸 넷을 출가시키고 남편과 아들이 떠난 자리에 박완서는 자신에게 던져진 고통과 삶의 무게를 애써 떨쳐버리지 않고 부둥켜 안은 채 늘 대중의 작가로서 새 출발을 한다.
“새벽 4시경 잠자리에서 일어나 구상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씁니다. 낮시간에는 모임에 가거나 잡무를 처리하죠. 요즘은 손 가는 사람이 없어 혼자 생활하다 보니,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죠.”
요즘의 대략적인 일과를 말하는 그의 등 뒤로 주부 박완서의 고운 손때가 묻었을 가구들이 정갈하게 번질거리고 있었다.
몇 편의 수필과 소설 속에 드러나는 유려한 문체 때문에 그를 대단한 달변가로 상상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 대해 “말을 별로 못해요.”라고 손 사래를 흔들고는 웃는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말을 많이 하기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손자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죠.”라고 말하며 탁자 위에 놓인 손자들의 사진을 하나씩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보통의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로 돌아왔을 때 그는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더듬어 문학의 바탕에 일상의 보석들을 재물로 바치고서, 해가 더욱 곱게 떠오를 날을 기다리며 저 너머 수평선을 바라본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4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