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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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5 19:32
영화배우 강수연 님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한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배우 강수연, 또렷한 이목구비만큼이나 열정적인 연기로 스크린을 누벼왔던 그의 서른 잔치는 가난한 예술의 상징인 연극무대에서 시작되었다. 그 무대는 세계 영화제에서 두 번이나 수상한 화려한 경력과 영화를 새로 찍을 때마다 출연료의 최고기록을 갱신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그가 출연료를 전혀 받지 않고 서는 것이어서 더욱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연습에 들어가기 시작한 작년 말부터 주목을 끌어왔던 극단 무천의 「메디아 환타지」의 막이 오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그를 찾아가 보았다.
지난겨울 내내 하루 4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다는데, 그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연극은 제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분야였습니다. 그리고 참 좋아하고요. 그래서 2년 전부터 연극 무대에 한번 서야지 마음먹고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 대본도 읽었죠. 그런데 마땅한 작품이 없어 망설이던 차에 메디아 역을 제의 받고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무대를 통해 또 다른 연기 경험을 쌓고 싶어요.”
광고도 쉽게 찍지 않는 그가 몇 번이고 온몸을 구르며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연극을 하겠다고 나선 데 대한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영화 출연도 한 해에 평균 두 편씩으로 제한할 정도로 자신을 아낄 줄 아는 배우다. 스스로 정말 하고 싶어지는 작품이 아니면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영화가 선보일 대마다 실망하는 관객은 없다. 오히려 어디서 솟아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무한히 솟는 그녀의 역량이 놀라워 누구나 아끼고 싶어지는데 이는 그녀의 타고난 소질, 오랜 단련, 투철한 프로정신, 강수연이라는 한 인간의 매력,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화면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어릴 때부터 20년 동안 혼자 영화판에서 부대끼며 커오면서 깡다구, 독종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이지만 일상의 생활에 대해서는 "참 재미없는 사람, 연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 무대 위가 아닌 곳에서 본 강수연은 관형사처럼 다라 붙는 "월드스타"라는 자의식이나 어떠한 거만함도 발견되자 않았다. 일이 없을 때는 그는 편한대로 입고 편한대로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일상에 대해서는 무심한 듯, 순진한 듯한 그이지만 일에 대해서만은 철저하고 독창적이다.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파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 전개가 매력적이에요"라고 이번에 맡은 역할에 대해 얘기하는 그녀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 대한 사랑과 증오, 그에 따른 복수와 자멸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야 하는 메디아 역에 이미 빠져있는 듯 했다. 자신을 잊고 맡은 역에 빠져 버리는 것, 말은 쉽지만 아무리 직업적인 배우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을 완전히 잊기 위해서는 그만큼 깨끗하게 자기를 비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철저히 자신을 지키는 힘, 그 힘에 대한 믿음이 내재돼 있어야만 가능하다.
“씨받이를 찍고 나서부터 연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러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전에 이미 「청춘 스케치」나 「고래사냥2」를 통해 성인 역을 소화해냈지만 역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이 후 그녀의 연기세계는 더욱 성숙한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강수연은 1966년 8월생.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태어났고, 2남 2녀 중 장녀다.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보다 끼가 엿보였던 그를 예사롭게 봐 넘기지 않았던 어머니에 의해 일찍 감치 연예계에 들어왔다. 함께 출연하는 성인 연기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똑 부러지게 연기를 해냈던 어린 아역 시절부터 그녀는 손수 자신의 분장을 했을 만큼 독립심이 강했다. 가르치지 않아도 연기에 관한한 총명함이 타고난 듯한 그녀였다.
강수연 하면 쉽게 떠올리는 것이 87년 9월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화려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함 모습은 몇 번이고 마음에 드는 화면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고, 노력의 땀을 흘리는 그 뒷모습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을 볼 기회가 관객들에게는 별로 없다. 「씨받이」에서 실감나는 출산 장면을 위해 수십 편의 비디오를 보고, 경험자의 얘기를 듣고,「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찍을 때는 불상 앞에서 삼천배의 절을 하는 장면을 위해 낮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삼천배 이상의 절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뿐.
발랄한 여대생. 가엾은 조선시대 씨받이 소녀, 창녀, 타락한 여자, 소매치기, 비구니, 물질의 노예가 된 재미교포, 벙어리 입양아 등등. 그녀가 보여준 이런 모습들은 그녀가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다양한 변신이었다.
“그동안 출연한 영화 중 내 연기에 대해 완전히 만족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인가 봐요. 가장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재작년에 「그여자 그남자」「웨스턴 에비뉴」「장미의 나날」의 출연을 끝으로 쉬고 있던 영화도 이번 연극이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일욕심이 채워질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는 그녀는 3월부터 「단주」라는 영화를 위해 무당 딸로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오로지 복수의 화신 메디아로 살아가련다 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자 : 조연혜님 기자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5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