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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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19:36
수원 시립교향악단 상임자휘자 금난새 님
우리에게 친근한 음악인 금난새 님(48세)을 만나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은 것은 봄기운이 절정에 달한 휴일 오후였다.
음악당으로 들어가 공연장 사방으로 난 제법 무거운 문들 가운데 하나를 밀고 들어가서는 순간 그속엔 또 다른 봄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싱싱한 그리고 결코 두텁지 않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수원 시향단원들과 지휘자 금난새 씨가 엮어내는 또 하나의 봄이었다. 실제 공연과 다름없이 진행된다.
“이번 달은 연주회가 15번이나 돼요. 하루걸러 한 꼴로 무대에서야 하지만 힘든 줄 모르겠어요.”
매일 강행군되다시피 하는 일정이 힘들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진 음악 이라는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고, 도 그로인해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보람이 있는 일이기에 피곤함을 잊는다고 말한다.
“저는 무엇보다도 클래식 음악은 어려운 것, 소수가 즐기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통념을 깨고 싶어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해 죄를 짓는 사람은 없어요. 문제는 환경이죠.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데는 환경, 특히 자연과 예술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음악 또는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과 꿈을 갖게 하는 좋은 환경으로서 자기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클래식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있고, 음악가는 그 아름다움을 소개할 의무가 있다고 그는 말해왔다. 그래서 그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무대에 서고, 대중과 호흡한다. 특히 작년부터는 <금난새와 함께 하는 음악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해 오면서 연일 매진이라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늘 품어온 소신과 부단한 실천적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음악인들은 시장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음악을 하는가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는 단원들에게 어떤 음악회든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라고 강조합니다. 큰 무대만 무대가 아니다. 미래의 청중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 같은 것이 더 소중하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이니까요.”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발전적으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어 늘 묵묵히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행동하므로 다른 이들을 자극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현재 상임지휘자로 있는 수원 시향과 함께 이뤄낸 신화 또는 그런 노력의 과정 속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KBS교향악단에서 한때 존폐까지 거론되던 수원 시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금전적인 문제나, 타인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수원 시향을 국내 정상의 악단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소신껏 활동했고 지금은 올 한 해 동안 70회의 공연 스케줄을 가질 만큼 왕성한 활동과 수준 높은 실력을 자랑하는 수원시향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원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금난새 씨는 이미 서울예고 시절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주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음악적 재능과 함께 탁월한 리더십, 기획력을 발휘했다. 서울대 재학시절에는 30여 명의 동료 학생들과 「영 앙상블」을 조직해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한편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쳤고, 이로 인해 미국음악협회가 주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베를린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세계적인 지휘자를 배출한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하므로 어느 분야에서나 탄낼 만큼의 재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직업적인 지휘자의 길만 가기로 결심하고 줄곧 한길만 걸어왔다.
“지휘자 되는데 아버님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 없어요. 아버님은 저녁에 돌아오셔서 늘 우리와 많은 대화를 하셨어요.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인생에 고나한 얘기였는데, 특히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하셨어요. 정말 중요한 걸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유명한 작곡가 금수현씨의 장남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중한 유산을 두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 아이들과 시간 나는 대로 박물관이나 자연을 찾는다. 그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모처럼의 휴식이 되는 셈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아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먼저 이 땅에 직업적인 지휘자의 전형을 만드는 일에 힘써야겠어요.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일에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꿈을 실천하는 일이고 제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부드러운 인상 속에는 명쾌하고 아름다운 생각들이 감춰져 있었다. 마치 연주자들을 지휘해 음을 창조해내듯 세상 사람들을 좋은 생각, 행동으로 이끄는 문화환경을 창조하는 지휘자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하려고 하기에 덩달아 힘이 솟구치는 느낌을 받고 음악당을 나왔다.
음악당 앞은 어느새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연인끼리 연주회를 기다리는 이들로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5년 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