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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안성기 님 영화배우 안상기 님을 만나기 위해 영화<헤어드레서>의 막바지 촬영이 있다는 수원의 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촬영은 밤 10시 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평소 기자들 사이에도 약속 잘 지키는 배우로 소문난 안성기였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인데, 제 시간에 촬영장으로 오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흔한 매니저 한 사람 대동하지 않고, 혼 자 택시를 타고 촬영장으로 온것이다. 수수한 옷차림과 안경,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못알아볼 만큼 평범한 모습이었다. "어떨 대 제일 좋으냐구요. 방금 끝난 작품이 좋은 반응 속에서 상영되고 있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 때가 아닐까요."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편안한 웃음이 살짝 번졌다. 한 해에 2편 이상 겹치는 출연은 하지 않는 다는 원칙으로 유명한 그가 작년부터는 부쩍 많은 작품을 하는 듯하다. 게다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각종 행사나 공연에 관계하고 여러가지로 더욱 바쁜 것 같다. "영화와 유니세프 활동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죠. 한 작품에 몰두하면서 이틀 정도 일하고, 다음 닷새 정도는 충전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데, 작년부터는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하니깐 요즘은 좀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는 얼마전 개봉된 영화 <천재선언>에서 속물 근성을 지닌 영화감독으로, 지금 찍는 영화에서는 말꽁지머리에 가위춤이 독특한 알리박이라는 미용사로 변신하고 있다. 오래전 부터 천의 얼굴을 가진, 변신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실감나게 그려 내고 있었지만, 요즘 그를 보고 있노라면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주목 받고 배우가 된 이후, 우리 영화중 화제작이라고 꼽히는 영화마다 어김없이 그의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 "영화를 좋아하니까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것 뿐이죠." 생명력 있는 연기 활동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크린에서나 만날 수 있는 멀기만한 스타가 아닌 오래된 친구처럼 친밀한 존재로 느끼는 것은 부담없고 친근한 그의 외모나 연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공통 분모, 건전한 행동양식과 가정생활도 그를 팬들과 가깝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조각가인 아내 오소영 씨와 두 아들이 함께 펼치는 일상과 아름다운 영상은 팬들에게 삶과 연기를 하나라는 믿음마저 던져준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신호 때는 아내에게 그림 지도도 받고 취미삼아 그림도 그리곤 했죠. 요즘은 힘들어요. 책읽는 것은 저에게 익숙한 일상입니다. 요즘은 피곤해서 책을 들면 얼마 되지 않아 졸기 바쁘지만…." 인물의 성격을 잘 묘사하기 위해 불교서적, 범죄심리학, 역사서 등 관련서를 독파하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익숙한 일상의 하나가 되어 있다. 3년전 그는 우리나라 연기자로는 최초로 국제 영화제에서 <안성기 영화주관>이 열리는 영광을 맛보았다. 또 기네스북 한국어판에 최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기록될 만큼 많은 상이 그와 함께 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관객이 더 이상 보기를 원하지 않을 때까지 배우 생활을 하겠지요. 그때까지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낡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제작 기획을 하던 부친의 권유로 5살 때부터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아역배우 생활을하던 그는 외국어대 베트남어과를 나와 한때 전공을 살려 취직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마침 그때 베트남고의 교류가 끊겨 그의 전공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그는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복귀하기 위해 숨죽이면서 기다렸지요.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아마 그때부터 평생 배우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습니다." 힘든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제작규모나 여건을 고려하면서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송에서 건너온 시인이 억대의 출연료를 당연시 할 때도 그는 적정 수준의 출연료를 고집해 왔다. "한번은 어떤 선배가 좋은 사람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작은 노력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는 몇 일 후 유니세프 일로 고난의 현장 캄보디아를 방문한다고 했다. 그곳을 다녀온 뒤는 캄보디아 어린이 돕기 행사도 계획되어 있다. "영화는 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죠. 물론 관객들은 재미있는 영화를 볼 권리가 있어요. 그러나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나 단순한 재미 이상의 어떤 것을 영화 속에서 끌어낼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관객들이 영화를 대하는 자세가 수동적이지 않고, 보다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단순한 오락으로, 시간 때우기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평은 우리 영화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리라. 안경 너머로 빛을 발하는 그의 눈빛에서 한국영화의 먼 미래가 엿보이는 듯 했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5년 08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