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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한국 컴퓨터업계의 자존심
kklist21 | 추천 (0) | 조회 (450)

2010-10-08 20:09

(주)한글과 컴퓨터 대표 이찬진 님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 소프트웨어계의 자존심"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올해 서른 고개를 넘긴 젊은 사장, 이찬진. 그러나 첫 인상만큼은 그저 듬직하면서 신선하고, 오히려 너무 평범하다고 느껴질 만큼 친근하다.
그에게서 대학 4학년 때 이미 "한글 1.0"을 발표한 컴퓨터 천재의 이미지와 한 해 매출 1백95억 원에 직원 3백여 명,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사인 "한글과 컴퓨터" 외에도 (주)한컴서비스, (주)한글프레스라는 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우상으로 꼽힐 만큼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 있지만, 그는 스스로 포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달변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아두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성실하게 합리적으로 자신이 정해둔 목표와 꿈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그리고 그의 화두는 언제나 한결같다.
“컴퓨터를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도구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사용자가 컴퓨터를 잘 몰라도 편히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죠.”
그의 컴퓨터에 대한 사랑은 고교 졸업 후 아버지가 사준 8비트짜리 컴퓨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차츰 컴퓨터에 흥미를 느낀 그는 서울대학교 기계학과에 들어간 후 컴퓨터 동아리에서 2명의 후배를 만났는데 이들의 만남이 "한글 신화"의 초석이 되었다. 88년 겨울, 그들은 편리한 한글 워드프로세스를 개발하기로 결의를 다지고, 학교와 서로의 집을 오가며 연구와 토론에 몰두했다. 그들의 계획은 이듬해 4월 성공을 거두고, 이찬진 사장이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90년 가을에는 "한글"을 위탁 판매한 이익금 5천만 원으로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고 공병우 박사님이 빌려준 4평짜리 사무실에 "한글과 컴퓨터"라는 간판을 걸었어요. 공박사님 외에도 참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셨어요.”
그가 컴퓨터매니아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느니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아주 순진한 동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늘 선진국의 뒤만 쫓아가는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라면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우리의 노력이 시대적 요구와 맞아떨어졌고 제 개인의 특별함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죠.”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개발에 몰두하던 초창기 시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거의 사생활이 없을 만큼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는 그 이지만, 그는 모든 공을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경영자로서의 그의 모습도 약간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는 어떤 체계나 규칙, 틀에 박힌 훈시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언제나 뜻을 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기업의 사회기여에도 소홀하지 않아 그때그때 형편껏 낙도 어린이들에게 신문을 보내주는 일, 농어촌에 컴퓨터 교실을 열거나 지원하는 일 등을 실천해왔다.
1995년 한 해는 이찬진에게 특별히 기억될 만한 한 해였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세계로 오라」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는 "프로그래머 이찬진"에서부터 3백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 이찬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책을 낸 이유는 저나 회사에 대해 소프트웨어 하나로 돈방석에 올라앉은 젊은 아이들 쯤으로 보는 오해를 조금이라도 벗기 위해서였어요. 또 저 개인이 너무 부각되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컴퓨터에 매달리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지낼까. 그는 농구를 무척 좋아한다. 농구에 관한 한 보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모두 대환영이다. 주말에 그는 회사 내 농구모임 사람들과 어울려 경기에 열중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꼭 결혼하겠다고 직원들 앞에 큰 소리를 쳐 놨는데, 뜻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수줍게 미소 짓는 이찬진.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그는 결혼보다 "한글과 컴퓨터"를 세계적인 종합소프트웨어 업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 혼신을 기울일 것 같다.
요즘 한창 얘기되고 있는 정보사회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기술적으로 취약하여 기껏 정보 고속도로를 닦아놓으면 외제차만 지나갈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이찬진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고유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정서를 잘 담아낸다면 소프트웨어만큼은 그들과 겨루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어떤 역경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어요. 우리에겐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두뇌들이 많지요.”
그는 소프트웨어를 컴퓨터라는 도구를 움직이는 영혼으로 본다. 그러므로 우리 사고방식과 문화체계에 맞는 소프트웨어, 즉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만이 우리의 시장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적어도 한글분야에서만은 우리 것이 최고일 수 있도록 계속적인 개발을 해나가겠다"는 이찬진 사장.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달콤한 찬사들에 만족하지 않고, 외국산 소프트웨어들 가운데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대접받는 국산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그리면서 식을 줄 모르는 청춘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6년 02월호